본래 노론과 소론은 서인으로 1680년 경신 환국을 계기로 갈라서게 됩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재집권했는데, 이 과정에서 훈척 김석주, 김익훈 등이 남인 역모를 고변하는 사건의 진위과 처벌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노장파는 정권 안정을 위해 훈척과 타협을 주장했으나 젊은 소장파는 훈척의 탈법, 무고를 엄단해야 한다고 주장해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남인 처벌을 놓고 노론은 강경, 소론은 온건한 입장을 표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1681년 윤증의 신유의서를 통해 송시열이 주자를 받들지만 주자를 따르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학문적 정통성, 지도권 다툼으로 나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