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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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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언제부터 두기 시작했나요?

최근 '더 글로리' 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바둑을 매개로 스토리가 진행이 되면서 바둑을 집 짓는데 비유하는데요, 바둑은 언제부터 두기 시작했나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바둑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둑 역시 스톤헨지와 마찬가지로 50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요임금의 재위가 기원전 24세기라고 하니 정확히 말하면 약 4500년 정도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요임금창제설을 믿지 않는다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바둑과 같은 ‘보드게임’을 통칭하는 중국어는 ‘기(棋)’인데 이 글자가 쓰인 가장 오래된 증거는 중국 은대(殷代, BC 16-11세기)의 갑골문이다. 만일 이 갑골문의 ‘기(棊)’자가 의미하는 것이 바둑이라면 바둑이 두어진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3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라는 글자는 바둑 이외의 다른 유사한 게임을 지칭할 수도 있고, 이름이나 지명(地名)과 같이 바둑과 전혀 관계없는 의미로 쓰였을 수도 있어 이것만으로 바둑이 당시에 두어졌을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고전인 『논어』와 『맹자』에도 바둑에 관한 언급이 있다. 『논어』의 <양화(陽貨)>편에는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弈者乎 爲之猶賢乎已”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풀이하자면 “하루 종일 배불리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바둑이나 장기 같은 놀이가 있지 않은가. 그거라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의미다.

      구절 중 ‘박혁(博弈)’이라는 단어가 바둑을 뜻한다는 것인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혁(弈)’이라는 글자는 후대에도 계속 바둑을 의미하는 글자로 쓰이므로 ‘박혁’이라고 하는 것은 바둑을 포함한 보드게임을 통칭하는 단어였을 가능성이 높다.

      『맹자』에는 바둑이 두 번 언급되어 있다. “今夫弈之爲數小數也 不專心志則不得也 弈秋通國之善弈者也”는 “지금 바둑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따라서 바둑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잘하기 어렵다. 혁추는 나라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여기서의 ‘혁(弈)’자는 확실히 바둑을 지칭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술 마시며 ‘박혁(博弈)’을 하면서 부모의 봉양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 대한 것인데, 『논어』의 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는 바둑을 지칭했다기보다 여러 보드게임을 한데 묶어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논어』와 『맹자』에서 언급된 것이 바둑이 맞다면 바둑이 두어진 시대는 최소한 공자가 살았던 BC 551~479년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맹자(BC 372~289)가 ‘나라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고, 바둑 때문에 부모 봉양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바둑이 보급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바둑이 처음 두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2500년 이상 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출토된 바둑판으로도 바둑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52년 중국 하북(河北)성 망도(望都)현의 후한(後漢)시대 장군(182년경 매장된 것으로 추측)의 묘에서 석제 바둑판이 출토되었다. 이 바둑판은 당시로서는 가장 오래된 바둑판이었을 뿐만 아니라 판 위의 줄의 수가 현재와 같은 19줄이 아니라 17줄인 점, 화점의 개수 역시 9개가 아니라 5개인 점 등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둑의 역사 - 바둑의 시작에 얽힌 다양한 주장들 (바둑 이야기, 남치형)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중국 전설상의 제왕인 3황5제 때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5세기~7세기 사이에 삼국시대에 소개되었으며, 그러나 이도 역사적으로 명확한 사실은 아니며 오히려 순장바둑이 조선 말기에야 나타났다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바둑의 기원은 누구에 의해서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게 전해지는 문헌이 없어 알길이 없다. 《박물지(博物誌)》에 '요(堯)나라 임금이 바둑을 만들어 아들 단주(丹朱)를 가르쳤다', 또 말하기를 '순(舜)나라 임금이 아들 상균(商均)의 어리석음을 깨치기 위하여 바둑을 가르쳤다', 또 '그 법이 지혜 있는 자가 아니면 잘 할 수가 없다'고 하였고, 《태평어람(太平御覽)》에도 요나라 임금이 아들 단주에게 바둑을 가르쳤고, 단주가 바둑을 썩 잘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 상고 때부터 바둑이 존재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논어(論語)》에 공자가 이르기를 '바둑 두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어진 일이다(以奕爲爲之猶賢乎己)'라고 한 것으로 보아 고대 중국에서는 많이 보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魏)나라 한단순(邯鄲淳)의 《예교(藝敎)》, 오(吳)나라 위소(韋昭)의 《박혁론(博奕論)》, 송(宋)나라의 《오잡조(五雜俎)》 등의 문헌에는 한위(漢魏) 이전의 바둑판은 17×17로(路)였다고 적혀 있다. 이 기록내용은 1953년 중국 한(漢)나라의 망도(望都:河北省 保定 부근)에 있는 고분을 발굴한 결과, 그 안에서 17×17로 된 돌로 만든 바둑판이 출토됨으로써 사실임이 밝혀졌다. 오늘날 19로반(路盤)이 쓰이게 된 것은 당(唐) 때부터라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