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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하늘소177
힘찬하늘소17723.07.27

장영실의 주요 업적과 생애가 궁금합니다.

장영실은 조선 세종시절의 과학자로써 유명한데요.


장영실의 출신은 원래 노비였다는데 어떻게 발탁되었고 주요 업적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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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의 그 당시 천재 과학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해시계, 자격루, 자동시보기, 갑인자, 간의, 수표, 측우기가 그의 주요 발명품입니다.

    그의 생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장영실은 부산 동래 관청에 묶여 있는 노비였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만들고 고치는 재주가 워낙 뛰어나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장영실은 궁궐에서 일하는 전문 기술자가 되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부지런히 살 수 있었습니다.

    장영실은 조선 태종 임금 때부터 궁궐에서 일했는데,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다 세종 임금을 만나 자신의 큰 뜻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대의 재주는 하늘에서 내린 것이오!”

    정말 그의 재주는 특별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은 본래 동래현의 관노이나 태종이 과학에 대한 훌륭한 재주를 인정하여 발탁되었습니다. 세종은 실용주의자로서 장영실의 적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부왕의 뒤를 이어 중용했으며 태종과 세종의 총애를 받아 노비 신분을 벗어나 관인이 될수 있었습니다.

    세종의 배려로 상의원 별좌에 임명된 이후 무관직인 정 5품 사직이 되었고, 1433년 자격루 제작에 성공, 정 4품 호군, 1438년 종3 품 대호군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이 장영실에게 호군의 관직을 더해 줄 것을 의논하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관노가 관인이 될수없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보이며, 이조판서 허조는 기생의 소생을 상의원에 임용할수 없다 하고, 병조판서 조말생은 이런 무리는 상의원에 더욱 적합하다 라고 합니다.

    세종은 또 다른 대신들과 의논하는 과정에서 장영실의 사람됨이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정교하고 똑똑하기가 보통에 뛰어나 강무할때에는 내시를 대신해 명령을 전하기까지 하였으며 장영실이 아니면 자격궁루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관직을 더해 주었습니다.

    1421년 세종은 장영실을 윤사웅, 최천구 등과 함께 중국에 보내어 천문기기의 모양을 배워오도록했고 이때 장영실은 과학에 대한 자료를 접할수 있게 되며, 후 세종의 명에 따라 천문기구를 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력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인 자격루, 옥루를 만들어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습니다.

    1434년 구리로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의 주조에 참여, 조선초기 이미 존재했던 금속활자를 보완하여 새롭게 제작했으며 1441년 세계 최초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 천체관측기구인 대간의 , 소천의를 비롯해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를 제작해 경복궁 간의대를 왕립 천문대로 만들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상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때 인물을 알아보았던 장영실과의 만남으로 뛰어난 업적들을 많이 남기게 되었습니다. 1414년 축우기를 제작하여 전국의 강우량을 측정하였는데 이는 1639년 이탈리아에서 발명한 측우기보다 약200년이나 앞섰다. 또 물시계를 발명하여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북 혹은 종, 징을 치게 함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만들었다. 장영실은 천체을 관측하는 혼천의를 만들었으며, 해시계 등을 이용해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였다. 현재 만원권 지폐 뒷면에 있다. 세종임금의 명령으로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의 이름은 양부일구이다. 또한 장영실과 김조, 이천 등이 제작한 물시계를 자격루라고 한다. 세계 최초의 우량계로 축우기라고 한다. 세계 최오로 개발된 강우량 측정기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