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의 결혼정책을 통해 호족을 융합하고 왕권을 안정시켰습니다. 하지만 태조 사후 왕권이 흔들리자, 광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족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려 했습니다. 그는 후주 출신 쌍기의 건의를 받아 과거제를 시행했습니다. 과거제는 음서처럼 가문이 좋은 사람에게 유리한 방식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로 호족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외에도 공복제, 노비안검법을 시행하고, 단호하게 호족을 숙청하여 호족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제 시행은 관료제의 기본 틀이 되었고,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진관료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