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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궁들은 풍수지리가 적용되었나요?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이나 창덕궁 창경궁같은 궁궐은 건설할때 풍수지리를 고려해서 지은 것인가요? 괴력난신과 같은 것을 믿지않는 유교에서 풍수지리가 허용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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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는 것, 궁궐을 짓는 것 모두 풍수지리의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입니다.

      그 한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새 나라, 새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1392년 새 도읍지로 한양(서울의 옛지명)을 선택했습니다. 한양을 도읍지로 선택함은 당시의 풍수지리 사상에 따른 것으로 그에 따른 도시계획 또한 철저히 진행되었습니다. 한양의 지형과 지세에 맞게 도시가 계획된 것입니다. 주궁인 경복궁은 현무(북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거북과 뱀이 뭉친 모양)에 해당하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백호(서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범)인 인왕산, 주작(남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붉은 봉황)인 목멱산(남산), 청룡(동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인 낙산, 이 네 개의 산에 둘러싸인 곳에 터를 잡아왔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고려해서 지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주요 궁궐은 모두 남향을 향하게 지었으며

      종묘의 전체적인 틀도 마찬가지로 남향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지어진 양반들의 한옥들은 남향으로 짓는 것이 관례가 된 것이지요.

      풍수지리를 딱히 허용했다기보단 자연스레 그런 사상이 기반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안지키기엔 찝찝한..?ㅎ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위치를 잡은 것도 풍수지리적 이론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일시 계룡산을 선택했다가 중지된 사실이나 다시 모악 남지가 천거된 것도 전부가 풍수적 안목에서였다고 합니다. 한양은 태조가 풍수의 대가 무학대사의 추천에 따라 국도로 구축한 것으로 풍수적조건을 완비한 풍수적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기에 궁궐도 풍수 지리에 따라서 건축 되었음은 자명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할 때 풍수에 능한 무학대사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풍수에 입각해 보았으며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것도 배산임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뒤로는 북악산이 있고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는 곳으로 명당자리에 궁궐을 지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의 궁들은 풍수지리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풍수지리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하는 학문으로, 조선의 궁들은 이 학문을 바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궁들은 산과 강, 나무와 꽃과 같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으며, 왕과 왕실의 안전과 번영을 기원했습니다.


      조선의 궁들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은 경복궁입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첫 번째 수도인 한양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경복궁은 북악산과 남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은 남향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태양의 기운을 받아들여 왕과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함입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