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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30

해동제국기에서 다루는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해동제국기'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해동제국기에서 다루는 내용은 어떤 것이며

역사적 의의는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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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책. 석인본. 1443년(세종 25)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가 왕명에 따라 찬진(撰進)한 것이다.

    ‘해동제국’이란 곧 일본의 본국 · 구주 및 대마도 · 이키도(壹岐島)와 유구국(琉球國)를 총칭하는 말이다. 찬술 당시의 내용은 해동제국총도(海東諸國總圖) · 일본의 본국도(本國圖) · 서해도구주도(西海道九州圖) · 이키도도(壹岐島圖) · 대마도도(對馬島圖) · 류큐국도(琉球國圖) 등 6매의 지도와 일본국기(日本國紀) · 유구국기(琉球國紀) · 조빙응접기(朝聘應接紀) 등이었다.

    그 뒤 2, 3편의 추록(追錄)이 첨가되어 1473년 전산전 부관인 양심조 궤향일 정서계(畠山殿副官人良心曹饋餉日呈書契)가 권말에 부록(附錄)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예조좌랑 남제(南悌)가 삼포왜호(三浦倭戶)의 실화(失火)를 진휼(賑恤)할 때 왕명을 받들어 삼포의 지도를 모사하고, 또 항거왜인(恒居倭人)의 호구(戶口)를 조사한 결과로 만들어진 웅천제포도(熊川薺浦圖) · 동래부산포도(東萊釜山浦圖) · 울산염포도(蔚山鹽浦圖) 3매가 권두의 지도에 첨가, 삽입되었다.

    또한, 1501년(연산군 7) 류큐국의 사자(使者)가 우리 나라에 내빙할 때 병조판서 이계동(李季仝)의 건의로 선위사(宣慰使) 성희안(成希顔)이 국정을 상문열기(詳問列記)한 것이 이 책 끝에 부록되었다. 이와 같이, 수차의 추록이 있었으나 원내용에 대해 보수(補修)한 흔적은 없다.

    이 책의 찬자인 신숙주는 세조 때의 중신(重臣)으로서 일찍부터 국가의 추기(樞機)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세조의 명령에 따라 영의정으로서 예조의 사무를 겸장,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 정책을 전담하였다.

    그리고 성종 즉위 이후 구규(舊規)를 정비하고 신제(新制)를 입안(立案), 해동제국 사인응접(使人應接)의 사례를 개정해 외교상의 면목을 일신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해동제국기≫는 그의 견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 당시 일본에서 전래된 문헌과 왕년(往年)의 견문, 예조에서 관장한 기록 등을 참작해 교린 관계에 대한 후세의 궤범(軌範)을 만들기 위해 찬술한 것이다. 따라서 추록된 부분도 연산군대의 것을 제외하고는 그가 직접 첨가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책은 한일 관계의 역사적 변천과 조빙응접(朝聘應接) 규정의 연혁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상당히 정비되어 있어 교린 관계의 선규(先規)로서 오랫동안 참고되어왔다.

    그러나 고간본(古刊本) 또는 고사본(古寫本)이 아직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못했고, 일찍이 인조 때 중간된 것이 예조 소속의 나이 많은 관리 집에서 겨우 1본(本)만이 보장(保藏)되었을 뿐이었다.

    중간된 뒤에도 1782년(정조 6) 4월의 외규장각형지안(外奎章閣形止案)과 같은 장서목록(藏書目錄)에서나, 또는 김경문(金慶門)의 ≪통문관지 通文館志≫와 안정복(安鼎福)의 ≪열조통기 列朝通紀≫와 같은 인용 서목에 책명만 보일 정도이다. 더욱이 그 내용도 지도를 제외한 전문(全文)이 ≪해행총재 海行摠載≫에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고사본 2, 3본이 알려져 있다. 즉, 고간본도 동경(東京)의 나이가쿠문고(內閣文庫) 소장의 구사에키모리씨고조쿠재장본(舊佐伯毛利氏江粟齋藏本), 동경대학 사료편찬소(史料編纂所) 소장의 구요안원장서본(舊養安院藏書本) 등 몇 종류가 있다.

    이 책은 조선 초기와 일본 무로마치막부시대(室町幕府時代)의 한일외교 관계에 있어서 가장 정확하고도 근본적인 사료이다.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에도시대(江戶時代) 한일관계 연구의 유일한 사료로 폭넓게 이용되어왔다.

    우리 나라에서는 1933년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서 ≪조선사료총간 朝鮮史料叢刊≫ 제2집으로 영인, 간행하였다. 그리고 1974년민족문화추진회(民族文化推進會)에서 ≪해행총재≫를 간행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해동제국기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동제국기는 신숙주가 쓴 일본에 관한 서적으로 1471년 쓰여졌습니다. 이 책은 일본과 유구의 지도와 양국의 국정과 조선과의 외교 모습을 나타낸 책입니다.

    해동제국기가 쓰여진 목적은 당시 국제 관례상 필요했기 때문이라고합니다.

    또한 유구국은 당시 조선과 정식 외교관계를 체결하고 있었고, 유구를 통해서 들어오는 동남아의 물품은 당시 조선에 매우 요긴하던 것들로서 유구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것입니다.

    이를 위해 당시 국제정세에 대해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신숙주가 중심이 되어 해동제국기가 쓰여졌습니다.

    출처 - 지식백과 해동제국기


  • 지식의 신
    지식의 신23.05.30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동제국기는 조선시대의 역사서로, 고려시대의 정치, 왕실, 외국 관계, 문화, 학문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고려 왕조의 설립과 왕실의 업적, 중국과의 관계, 전쟁, 문인들의 활동, 학문적인 내용 등을 다양하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이해와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25년(1443)에 신숙주는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처음 대마도, 이키 섬, 일본, 류큐 왕국 지역을 견문했다. 이후 세조시기에 영의정으로서 예조의 외교 정책을 전담하면서 당시 왕 세조의 명으로 과거 자신이 다녀온 각 지역의 사회, 풍속, 문화, 지리, 생활상, 정치·외교관계 등을 총체적으로 분류, 정리하여 성종 2년에 최종적으로 편찬한 책이다.

    -출처:나무위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성종 2년(1471)에 신숙주가 왕명에 따라 쓴 일본에 관한 책. 해동 제국이란 일본의 혼슈(本州), 규슈(九州), 이키섬[壹岐島], 쓰시마섬[對馬島], 류큐(琉球) 제도 따위를 이르는데, 이들 지역의 지세ㆍ국정ㆍ국교 따위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였다. 조선 전기의 한일 관계사와 일본의 역사ㆍ지리를 아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권 1책의 인본.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책. 석인본. 1443년(세종 25)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가 왕명에 따라 찬진(撰進)한 것입니다.


    ‘해동제국’이란 곧 일본의 본국 · 구주 및 대마도 · 이키도(壹岐島)와 유구국(琉球國)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찬술 당시의 내용은 해동제국총도(海東諸國總圖) · 일본의 본국도(本國圖) · 서해도구주도(西海道九州圖) · 이키도도(壹岐島圖) · 대마도도(對馬島圖) · 류큐국도(琉球國圖) 등 6매의 지도와 일본국기(日本國紀) · 유구국기(琉球國紀) · 조빙응접기(朝聘應接紀) 등이었습니다.


    그 뒤 2, 3편의 추록(追錄)이 첨가되어 1473년 전산전 부관인 양심조 궤향일 정서계(畠山殿副官人良心曹饋餉日呈書契)가 권말에 부록(附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예조좌랑 남제(南悌)가 삼포왜호(三浦倭戶)의 실화(失火)를 진휼(賑恤)할 때 왕명을 받들어 삼포의 지도를 모사하고, 또 항거왜인(恒居倭人)의 호구(戶口)를 조사한 결과로 만들어진 웅천제포도(熊川薺浦圖) · 동래부산포도(東萊釜山浦圖) · 울산염포도(蔚山鹽浦圖) 3매가 권두의 지도에 첨가, 삽입되었습니다.


    또한, 1501년(연산군 7) 류큐국의 사자(使者)가 우리 나라에 내빙할 때 병조판서 이계동(李季仝)의 건의로 선위사(宣慰使) 성희안(成希顔)이 국정을 상문열기(詳問列記)한 것이 이 책 끝에 부록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수차의 추록이 있었으나 원내용에 대해 보수(補修)한 흔적은 없습니다.


    이 책의 찬자인 신숙주는 세조 때의 중신(重臣)으로서 일찍부터 국가의 추기(樞機)에 참여한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세조의 명령에 따라 영의정으로서 예조의 사무를 겸장,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외교 정책을 전담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종 즉위 이후 구규(舊規)를 정비하고 신제(新制)를 입안(立案), 해동제국 사인응접(使人應接)의 사례를 개정해 외교상의 면목을 일신하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해동제국기≫는 그의 견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 당시 일본에서 전래된 문헌과 왕년(往年)의 견문, 예조에서 관장한 기록 등을 참작해 교린 관계에 대한 후세의 궤범(軌範)을 만들기 위해 찬술한 것입니다. 따라서 추록된 부분도 연산군대의 것을 제외하고는 그가 직접 첨가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책은 한일 관계의 역사적 변천과 조빙응접(朝聘應接) 규정의 연혁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상당히 정비되어 있어 교린 관계의 선규(先規)로서 오랫동안 참고되어왔습니다.


    그러나 고간본(古刊本) 또는 고사본(古寫本)이 아직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못했고, 일찍이 인조 때 중간된 것이 예조 소속의 나이 많은 관리 집에서 겨우 1본(本)만이 보장(保藏)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중간된 뒤에도 1782년(정조 6) 4월의 외규장각형지안(外奎章閣形止案)과 같은 장서목록(藏書目錄)에서나, 또는 김경문(金慶門)의 ≪통문관지 通文館志≫와 안정복(安鼎福)의 ≪열조통기 列朝通紀≫와 같은 인용 서목에 책명만 보일 정도입니다. 더욱이 그 내용도 지도를 제외한 전문(全文)이 ≪해행총재 海行摠載≫에 수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고사본 2, 3본이 알려져 있습니다. 즉, 고간본도 동경(東京)의 나이가쿠문고(內閣文庫) 소장의 구사에키모리씨고조쿠재장본(舊佐伯毛利氏江粟齋藏本), 동경대학 사료편찬소(史料編纂所) 소장의 구요안원장서본(舊養安院藏書本) 등 몇 종류가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 초기와 일본 무로마치막부시대(室町幕府時代)의 한일외교 관계에 있어서 가장 정확하고도 근본적인 사료입니다.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에도시대(江戶時代) 한일관계 연구의 유일한 사료로 폭넓게 이용되어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33년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서 ≪조선사료총간 朝鮮史料叢刊≫ 제2집으로 영인, 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1974년민족문화추진회(民族文化推進會)에서 ≪해행총재≫를 간행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전기 문신 신숙주가 일본의 지세와 국정, 교빙내왕의 연혁, 사신관대예접의 절목을 기록한 외교서 입니다.

    이 책은 조선 초기와 일본 무로마치막부시대의 한일외교 관계에 있어 가장 정확하고 근본적인 사료이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에도시대 한일관게 연구의 유일한 사료로 이용되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