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얄타회담과 포츠담 회담을 소련이 태평양 전쟁, 즉 대일전 참전 의사를 지속적으로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한 과정에서 이미 한반도 분할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미국은 한반도는 일본 영토의 일부분으로 여겨졌습니다.
소련은 1945년 8월 9일 미국이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에 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소련 남진을 차단하기 위해 38도선을 제안하여 분단이 확정되게 되었습니다. 당시 38도선은 만주를 포함한 일본 영토의 중간선이고, 33도에서 43도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간에 있어 분단선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했으나 38도선 이남 지역에 서울과 도쿄가 포함되어 미국이 오히려 더 양보를 고려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