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는 로마 최초의 황제는 아닙니다. 다만 로마 공화정 시기 독재관으로 황제처럼 처신하다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포에니 전쟁 이후 자영농이 몰락하고, 크라쿠스 형제의 개혁 실패 이후 로마는 평민파와 벌족파의 대립하였습니다. 게다가 스파르타쿠스 반란 등으로 로마는 혼란하였으며, 이 상황에서 군인 정치가가 등장하여 이를 수습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삼두정치입니다.
카이사르는 1차 삼두 정치를 주도한 인물로 권력을 키웠습니다. 이후 갈리아 전쟁으로 군사적 명성을 쌓고 원로원과 충돌하자 루비콘 강을 건너서 로마로 진군하여 내전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폼페이우스를 격파하여 종신 독재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달력 개혁, 시민권 확대, 부채 조정, 노병 정착 개혁 등 중앙 집권적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원로원을 중심으로한 공화주의자들에게 황제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카이사르는 이들에게 암살되면서 그의 양자 옥타비우스와 부장 안토니우스 등 2차 삼두정치를 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