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건국과정과 멸망이유는 무엇인지 질문 드립니다.
발해 하면 대조영이 생각이 납니다. 드라마에서도 본 기억이 있구요.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30년이 지난 후에 발해가 건국이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발해 건국은 어떠한 과정을 거쳤고 또 멸망한 원인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의 정식 명칭은 대진국입니다. 당시 중원의 당나라가 자신들이 황제국가로 제후국인 것처럼 인정하여 대중상은 진국공, 걸사비우를 허국공이라 봉한다는 칙서를 내렸고, 걸사비우가 이를 거부하였고, 당과 대치하다가 사망하였고, 대중상도 얼마 후 사망하고, 대조영이 황위에 오르자 당에서는그것을 또 격하하여 발해군왕에 봉하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사서를 기준으로 발해라는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그 전에는 일본 등 주변국에서는 여전히 고려라고 불리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진국 발해는 황제국으로 전승한 고구려 이상으로 맹위를 떨친 강국으로 해동성국이라 불리었습니다.
대진국 발해는 고구려계와 말갈계를 대표적으로 하여 다민족 국가로서 고구려계였던 대중상, 대조영, 말갈계의 걸사비우를 주축으로 하여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에서 딱 30년 후인 698년에 건국되었고, 926년에 거란의 침공과 내분으로 인해 멸망하였다고 합니다. 멸망의 시점은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발해 멸망 후 바로 그 유민들이 후발해를 건국한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그 이유는 책부원귀, 오대회요, 구오대사, 오대사기, 속자치통감 등의 중국 사서에 발해 멸망 3년 뒤인 929년 5월 발해에서 고정사라는 사신을 파견하는 기록도 나오고, 929년 7월 19일 그 고정사를 태자 세마로 삼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고려사>에 934년 발해 태자 대광현이 그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고려로 귀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이후 기록에는 발해라는 명칭이 보이지 않고, 같은 대씨 성의 왕과 태자에 대한 기록에서 정안국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발해라는 국호가 정안국으로 내부적인 이유에 의해 바뀌지 않았나 판단됩니다. 200년 이상 지속된 강국이었습니다. 991년 기록에서도 왕자인 대원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까지도 왕권을 발해 왕족인 대씨가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698년-926년)는 고려 전기에 존재한 한국의 독립국가로, 현재의 한반도 북동부 지역에 위치했습니다. 발해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 698년: 발해가 고구려의 후손인 동명왕(東明王)을 건국자로 삼아 세워졌습니다.
- 713년: 발해는 중국의 통일신라와 동맹을 맺고, 통일신라의 도움을 받아 규모를 확장했습니다.
- 751년: 발해는 통일신라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대신 태종왕(太宗王)이 중국의 탕(唐)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 785년: 발해는 탕의 침략을 받아 탕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 892년: 발해는 탕의 압박을 벗어나 독립을 선언하고, 왕건(王建)을 왕으로 즉위시켰습니다.
- 901년: 발해는 탕의 침략을 받아 왕건이 탕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 926년: 발해는 탕의 침략으로 인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발해는 약 228년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과의 동맹과 침략, 그리고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등이 그 주요한 사건들입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