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는 어떤 분인가요?
수단에서 의료사역을 하다 사망한
이태석 신부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의미해서 울지마 톤즈가 제작된 걸로 알고 있는데
그의 생애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1994년 서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2000년 종신서원을 받은 후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아 아프리카 수단으로 선교 사제로 파견되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2년 9월 19일 부산에서 출생, 1981년 부산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를 졸업합니다.
1990년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1991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 1992년 광주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 1994년 1월 30일 첫 서원을 받았으며 1997년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했으며 2000년 4월 종신서원을 하였으며 그 해 6월 28일 부제서품을 받았습니다.
2001년 6월 24일 서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11월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로 갑니다.
이곳은 수단의 내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며 주민들은 살길을 찾아 흩어져 황폐화된 지역으로 그는 이곳에서 가톨릭 선교활동을 했으며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주민들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흙담과 짚풀로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웠으며 병원까지 찾아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순회하며 치료를 했으며 그의 병원이 점차 알려져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게 되어 원주민들과 벽돌을 만들어 병원건물을 직접 지어 확장합니다.
오염된 톤즈 강물을 마시고 콜레라가 매번 창궐하자 톤즈의 여러 곳에 우물을 파 식수난을 해결, 농경지를 일구고, 학교를 세워 원주민 계몽에 나섰습니다.
초등교육을 시작으로 중, 고등학교 과정을 차례로 개설, 학교 건물을 신축했으며 음악을 좋아했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원주민들을 치료하는데 음악이 가장 좋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치료의 목적으로 음악을 가르치고 예상을 넘는 효과가 있자 학생들을 선발해 브라스밴드를 구성, 그의 밴드는 수단 남부에서 유명세를 타 정부행사에 초청되어 연주했습니다. 2005년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제 7회 인제인성대상을 수상합니다.
그러나 그는 2008년 10월 톤즈 현지에서 이태석 신부와 함께 헌신하던 의사 신경숙에게 혈흔이 발견되어 그해 11월 휴가차 입국했을 때 순천향대변원에서 종합검진을 받고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습니다. 그의 암은 이미 간으로 전이되어있었고 그는 아프리카에 머무는 동안 항생제를 투약하지 않아 자신의 몸은 항암치료에 잘 반응할 것이라며 완치에 대한 희망을 가집니다.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에 머물며 투병생활을 했으며 수도원은 자신이 머물기 가장 편한 곳이라 하였으며 항암치료가 끝나고 며칠 양평에 머물며 단식과 생식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했지만 증세는 나빠졌으며 결국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48세를 일기로 영면했습니다.
투병생활 중 2009년 12월 17일 제2회 한미 자랑스러운 의사상 수상, 그가 작곡한 묵상이 대표곡이며 저서로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겪은 일상의 에피소드를 집필한 에세이집 친구가되어주실래요를 남겼습니다.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2년 9월 19일 부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를 졸업, 1991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 1992년 광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2001년 6월 24일 서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11월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Tonj)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서로 화합하고 즐겁게 사는 법을 알게 하고, 학교를 지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마을의 유일한 의사로서 활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님은 2010년 49살의 나이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의사 출신인 이태석 신부는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마에서 봉사를 위해 살아 가다가 소천한 분이 십니다. 아프리카 수단에 학교를 짓고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해서 학교를 다니게 한 제자가 수백명 이라고 합니다. 이태석 신부처럼 의사가 됐거나 의대에 다니는 제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의대생이 된 제자 16명이나 되고 고 보니, 의사거나 의대생이 된 제자가 무려 57명에 달하다고 합니다. 남수단 작은 톤즈 마을에 신부님이 지은 허름한 학교에서 6년 만에 국립대 의대생 57명이 나온 것입니다. 그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공무원, 대통령실 경호원, 언론인까지 모두 70명의 제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태석 신부는 그렇게 톤즈 마을에서 하루에 3백 명씩 진료하고,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을 사업도 도와주고, 매일 같이 한센인 마을을 찾아가 진료를 하고 식량을 나눠줬다고 합니다환자들의 일그러진 발을 직접 씻겨주고 치료해줬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한센인 마을에 가서 계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신부만 오면 모두 나와서 자신들의 고민거리를 다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신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넘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해결해주려 골몰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에서는 이태석 신부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 입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로 파견을 자청하여 그곳에서 교육과 의료봉사에 헌신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장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군복무를 마친 뒤 1991년 살레시오회에 입회했다.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2001년 사제서품을 받자 아프리카로 향했다. 톤즈에 병실 12개 짜리 병원을 짓고 하루에 200~300명의 주민을 진료했다. 한센병을 비롯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보살폈으며,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이 자립하도록 도왔다. 음악으로 아이들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했다.
2008년 11월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1년간의 투병생활을 이어갔다. 이태석 신부의 장례미사는 2010년 1월 16일 살레시오 관구관에서 1,500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2006년 11월 제7회 인제인성대상 특별상, 2007년 3월 제23회 보령의료봉사상, 2009년 12월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2010년 제1회 KBS 감동대상 대상을 받았다
이태석 신부는 대한민국의 로마 카톨릭 신부로, 그의 일생은 아프리카 수단의 사람들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로 채워졌습니다. 그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85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의사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큰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의사로서의 직업을 포기하고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그는 신부가 되기 위해 로마로 건너가서 공부하였고, 그곳에서 그는 아프리카에서의 봉사에 대한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2001년에 그는 수단으로 건너가 톤즈(Tonj) 지역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의료센터를 세웠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질병, 굶주림, 빈곤에 시달리는 수단 사람들을 위해 집도 지으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학교를 운영하는 등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의 삶과 봉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이야기는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리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2010년에 결핵으로 인해 48세의 나이에 수단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안타까움을 가져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석 신부의 정신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의 삶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