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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동그라미417
알록달록동그라미41723.05.06

근현대사에서 '대한독립의군부'가 했던 일들에 대해 궁금합니다.

근현대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다양한 독립 단체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대한독립의군부라는 단체가 했던 업적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지 여쭤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립의군부라고도 불렀다. 1906년 최익현(崔益鉉)의 지휘 아래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 대마도(對馬島)에 유배되었던 임병찬(林炳瓚)은, 귀양에서 돌아온 뒤인 1912년 고종의 밀칙을 받고 독립의군부 전라남도 순무대장(巡撫大將)의 이름으로 비밀리에 동지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독립의군부는 전 낙안 군수 임병찬이 고종의 밀지를 받아 조직한 단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1912년 9월 고종의 밀지가 처음 내려졌을 때는 고사하였지만, 1913년 1월과 2월에 다시 밀지를 받고는 단체를 조직하였습니다. 독립의군부는 기존에 의병 투쟁을 전개했던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전국적으로 조직이 추진된 의병 계열의 비밀 단체였는데, 전라도 지역 조직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였습니다. 국권 반환과 일본군 철병을 목적으로 한 독립의군부는 국권 회복 요구서의 발송을 비롯하여, 태극기 게양 운동과 향약 실시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일제 헌병 경찰의 감시와 탄압이 심했던 상황에서 한국민의 독립 정신을 환기시키고 한국민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고 있음을 외부에 알리는 운동이었습니다.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인 오쿠마 시게노부에게 보낸 투서가 문제가 되어 1914년 5월 수원군 대표 김창식이 발각되었습니다. 이후 임병찬을 비롯한 관련 인사들이 연이어 체포되면서 조직이 와해되었습니다. 독립의군부는 대한제국의 부활을 추진하는 복벽주의적 성격을 가진 운동이었지만, 의병 투쟁을 계승하여 전국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했다는 것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정부와 조선 총독 및 주요관리에게 일제의 한반도 강점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국권반환을 촉구하는 요구서를 보내는 한편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의병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활동목표였습니다.

    1914년 5월 국권반환요구서를 전국의 조직을 통해 일제히 발송하고 360여개 처에서 일제히 국권반환과 일본군철병을 요구하는 전화를 하기로 하나 단원 김창식이 붙잡힘으로 조직이 발각되었고, 주요 임원과 임병찬이 일본경찰에 잡히면서 대한독립의군부는 해체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서 활동했던 비밀결사 독립운동 단체입니다. . 1906년 최익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던 임병찬은 대마도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대한제국으로 귀국하였고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의병, 1910년에 경술국치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임병찬은 한일합방이 선포되자 의병을 일으킬 준비를 했고, 그러던 와중에 임병찬은 1912년 고종의 밀지를 받고 호남지방에서 의병과 유생들을 모아 비밀결사인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독립의군부의 활동 목표는 일본의 내각 총리대신과 조선총독 및 주요 관리들에게 국권반환 요구서를 보내 한국 강점의 부당함을 깨우치고, 대규모 의병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