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Jy천사1004
Jy천사100424.04.15

대조영이 발해를 세우게 된 배경은?

안녕하세요? 발해의 대조영은 초대 왕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어떤 경위를 통해서 발해라는 나라를 건국했는지 그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조영의 고구려 유민으로 걸걸중상의 아들입니다. 고구려가 668년 멸망하고 각지에서 부흥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당은 이를 통제하기 위해 유민들을 영주로 옮겨 감시, 관리하였습니다.

    그런데, 대조영이 살던 시대 당나라 국경도시 영주는 고구려 유민 외에도 거란, 말갈 등 강제 이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영주는 넓은 지역이라 치안 상태가 늘 불안했습니다. 강제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대개 귀족이나 벼슬아치 등 유력자들이었다. 또 중국 내지로 끌려가던 고구려 포로 가운데 일부도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당나라는 이들을 이곳에 살게 하면서 회유해서 복종시키거나 호되게 강제 노역으로 내몰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거란 추장 출신인 이진충과 손만영이 반란을 일으켜 영주 도독을 죽이고 영주를 점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혼란을 틈타 고구려 유민은 걸걸중상(대조영의 아버지), 말갈족 추장 걸사비우와 함께 탈출하여 동쪽으로 탈출하였습니다. 당군은 추격전을 펼쳤으나 실패하였습니다. 마침내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토섭하여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습니다(689년)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멸망 이후, 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 영토로 끌려가거나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대조영은 뛰어난 리더십과 군사적 능력으로 고구려 유민들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698년, 대조영은 동모산(지금의 둔화시 청산쯔산성)에서 발해를 건국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땅 곳곳에서는 고구려 부흥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눈에 가시 같던 고구려를 점령한 당은 고구려 유민들이 다시 나라를 일으킬까 두려워했기에 그래서 20만 명이 넘는 고구려 백성을 당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 중에는 당에 저항하는 핵심 세력들이 대부분 포함되었어요. 이렇게 끌려간 고구려 유민은 가까이는 요서 지역인 영주로, 멀리는 양쯔강 남쪽의 황무지까지 끌려가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는데 대조영도 고구려가 멸망하자 많은 고구려 유민과 함께 영주로 끌려왔고 당시 영주는 당이 동북방의 이민족을 막기 위해 세운 전진기지가 있던 곳이었스비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말갈인, 거란인 등 여러 민족이 강제로 끌려와 뒤섞여 살고 있었고 이들은 모두 당에 대해 불만과 불신을 가슴 속 깊이 품었어요. 그래서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고 이에 발해를 건국 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68년 당은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 땅을 차지하기 위해 평양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했고 고구려 유민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에 대한 저항을 계속했고 이에 당은 고구려 유민을 통제하기 위해 영주로 강제 이주했습니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해 말갈인, 거란인 등 다수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으므로 언제든 반란을 일으킬수있는 상태였습니다.

    696년 5월 거란추장 이진충과 손만영이 영주도독 조홰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봉기했고 혼란을 틈 타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사리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 말갈인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이동 중 말갈인을 이끌던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을 이끌던 대사리 걸걸중상이 전사하며 대조영이 무리를 이어 받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대조영은 추격해오는 이해고와 당나라 군을 천문령 전투에서 크게 무찌른 뒤 만주 동부 지방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규합해 698년 길림성 돈화현 부근에 위치한 읍루의 동모산 기슭을 차지하고 당나라의 안동도호부를 정복해 도호부의 한족들을 노비로 강등시키면서 진국을 건국했고 말갈촌장 , 고구려 촌장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진국왕이 되는데 고왕 대조영은 천통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당나라는 대조영의 발해 건국이 기정사실화 되고 돌궐, 거란, 해 등의 압력으로 요하 유역과 만주 일대를 발해에게 정복당하고 안동도호부도 멸망하자 발해인들을 달래기 위해 705년 책봉을 시도했으나 불발되었고 713년 대조영은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이 되었고 홀한주 홀한주도독의 벼슬을 추가, 당나라는 발해의 번성에 굴복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은 창업군주이지만 출신과 관련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어디 출신인지는 물론 어느 가문 출신인지도 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걸걸중상과 부자지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확인할 길이 없고 사서에 대중상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것은 2020년 이전에는 없어서 대조영의 아버지 시절에 대씨라는 성이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것은 곧 창업군주가 고구려계인지 말갈계인지와 맞닿아 있어서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튼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 영주에 있는 많은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