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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작곡가는 왜 기념관 까지 세워서 기리나요?

통영 국제음악제 시즌이되면 항상 윤이상 작곡가 라는 사람을 주제로 음악도하고 기리고 하던데

윤이상 작곡가라는 사람이 어떤 일을 했기에 기념관까지 세워서 기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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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희 전문가
    김수희 전문가
    엘림실내악단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윤이상은 현재까지 세계음악계에 가장 잘 알려진 한국의 작곡가이다. 그는 통영(지금의

    충무)에서 태어났다. 그는 살아있을 당시에 이미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인정을 받은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상황은 그의 개인적 생활에 비극적 흔적을 남겼다. 5음계를 조금 넘어서는 노래로서 간단한 장식음을 섞어서 나름대로의 한국풍을 의도한 음악으로 보인다. 그는 다른 음악들도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는 유럽에 건너간 후 한국에서 쓴 모든 작품들을 파기한다.

    1957년 프랑스로 건너가 빠리 음악원에서 이후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한다.그후 유럽의 여러 음악제에서 참여하여 이름이 알려졌고, 독일에 정착한 그는 유럽의 현대음악과 한국음악 및 동양음악을 융합하는 작곡세계를 펼쳐나간다.

    1967년에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을 치르는데, 이 사건이 그에게 남긴 후유증은 그의 평생 내내 남는 것이었다. 그는 독일 정부의 간섭으로 2년 후 석방되어 독일로 되돌아간다.

    한편으로 그는 한국음악에 대한 연상작용을 통해 작곡하기도 했다.

    이는 국악 중 민속악보다는 궁중음악과 관련된 부분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한국음악관련성은 우선 쉽게 눈에 띄는 것으로는 한국의 악기의 음색을 서양악기로 옮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오보에는 피리를, 하프는 가야금을, 플루트는 대금을, 바이올린은 해금을 대신하여 소리내는 것이었다.

    또한 작품에 한국적인 제목이나 음악형식을 사용하기도 했다(Reak-禮樂, Bara-바라, Gasa-가사歌詞 등등).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윤이상 작곡가는

    서양 악기를 통해 한국 전통 음악의 음향을 구현하려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중심음 기법 등 독창적인 어법을 구사하여 세계적인 작곡가로 발돋움했습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은 뒤 서독으로 귀화하였고, 이후 타계할 때까지 대한민국 땅을 밟지 않았다. 억울한 누명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독일 귀화 이후 여러차례 북한을 방문하였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구요

    일제강점기인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서 태어났다. 흔히 통영군이 윤이상의 고향으로 언급되지만, 호적 기록에 따르면 산청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치적 문제가 있어 소외되었다가 세상이 바뀌니 통영에서 이슈화를 시켜 알리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기념관 설립 조건은.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는지 나라에 어떤 공헌을 세웠는지. 주변 사람들 추천으로 설립되는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윤이상 작곡가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음악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매우 인기가 있으며, 특히 그의 대표작인 '아리랑'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요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윤이상 작곡가는 1915년에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1946년에 '아리랑'을 비롯한 여러 곡을 작곡하면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선율과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가사로 인해 대중들에게 매우 사랑받았으며, 특히 '아리랑'은 한국 전역에서 사랑받는 민요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통영시에서는 윤이상 작곡가 기념관을 세워 그의 작품과 생애를 기리고 있습니다. 또한 매년 통영 국제음악제에서는 윤이상 작곡가의 음악을 공연하면서 그의 업적을 다시금 되새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