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세력에 합류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삼국지에서 보면 전쟁의 가운데 제갈량은 자기 고향에만 거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왜 다른 여타 세력에 임관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갈공명은 사마휘 휘하의 제자 중 한명이였는데 사마휘의 추천을 받아 유비가 등용시켜준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갈량은 다른 세력에 임관하지 않고 자신의 고향에서 기다린 이유는 본인의 뜻을 함께할 주군을 찾이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갈량과 같은 경우 당시 초야에 묻혀서
농사일 등을 하는 등 당시 사회가 혼란스러웠기에
이러한 사회에 합류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반적으로 초야에 묻혀살려고 했던 선비를 초가집에 3번이나 찾아온 것에 감복하여 출사했다는 제갈량의 말은 사실일까요?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봅니다. 초야에 있으면서도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견주었습니다. 관중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으로 뛰어난 내정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었고 악의는 연나라의 명장이자 현자로 뛰어난 전술로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관중과 악의를 롤모델로 삼고 자신을 알아 줄 군주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비일까 오나라의 손권은 그 뜻이 크지 않아 큰 그릇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조조는 간사하고 권모술수에 능하여 그 진의를 알 수 없을 뿐더러 순욱 곽가 정욱 등의 인재가 두루 있어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비록 유비는 삼국 중 최약체이지만 인품을 갖췄고 자신을 알아봐 주니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