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고종이 명성황후릉의 전화기를 설치했나요?
고종이 전화기를 조선에 들여오자마자명성황후 무덤에 설치하여 아침 저녁으로명성황후 무덤쪽에 전화를 걸어 세상을떠난 명성황후에게 안부 인사를 물었다는데이게 야사인지 정사인지 그리고 정말사실인지 믿기지가 않아서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화기를 들여오자마자는 아니고, 1896년 덕수궁에 자석식 전화기가 설치되어 고종이 즐겨사용했으며 이 전화는 주요 관아는 물론 인천까지 개통된 것으로 당시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백범 김구는 복수하겠다며 쓰치다 조스케라는 일본인을 살해해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렸는데, 고종은 인천감옥에 직접 전화해 청년 김구에 대한 사형집행을 중지, 이는 전화가 개통된지 사흘째 된 날이었습니다.
그 이후 고종은 전화기를 자주 사용했는데 명성황후의 유해가 안장된 홍릉에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 사별한 부인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1명 평가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입니다. 다만 명성 왕후가 아니라 신정왕후 입니다. 궁궐에 들어와 어머니로 모신 신정왕후의 서거 이듬해, 고종은 18㎞ 떨어진 경기도 구리의 동구릉으로 매일 행차해 무덤 앞에서 곡을 하는 대신 임시 전화선을 놓고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며 3년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1명 평가안녕하세요. 안경국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은 대한제국 말기에 활동한 마지막 황제이며, 1907년에 폐하 교통부라는 표어로 국내 최초로 전화기를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고종 황제 본인이 직접 사용한 것이 아닌, 그가 통치하는 제도체제 내에서 정부의 기능을 보완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조치였습니다.
이것이 "명성황후릉"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제공되지 않아 확실한 정보는 없습니다. 명성황후릉은 고종의 헌의적인 뒷모습을 대변하는 장소로, 이런 전화기 설치와는 별개로 그의 행적을 기리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1명 평가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고종이 전화기를 조선에 들여오자마자 명성황후 무덤에 설치하여 아침 저녁으로 명성황후 무덤쪽에 전화를 걸어 세상을 떠난 명성황후에게 안부 인사를 물었다는 이야기는 야사입니다. 야사란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진실성이 입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말합니다. 따라서, 고종이 명성황후 무덤에 전화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는 그 진실성이 입증되지 않은 야사입니다.
그러나, 고종이 명성황후를 매우 사랑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두 번째 부인으로, 고종이 가장 총애했던 여인입니다. 명성황후는 1895년 일본인에 의해 시해당했는데, 고종은 명성황후의 죽음에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고종은 명성황후를 위해 많은 추모 행사를 열었고, 명성황후의 무덤을 지어 정성을 다했습니다. 따라서, 고종이 명성황후 무덤에 전화를 설치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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