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 카톨릭이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로도 그 권위를 유지한 비결이 뭘까요?
로마 카톨릭은 로마의 국교가 됨으로 성장한 세력인데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그 세력을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멌던 데에는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요?
당시의 국제 정세에서 어떤 방식으로 유연하게 대처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4세기 군사적 약화와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던 서로마 제국으로 게르만계의 여러 부족이 이동했습니다. 훈족의 서진에 자극을 받은 게르만민
족은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제국 각지에 정착하면서 여러 부족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이 시기 비록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으나 로마교회는 건재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긴 뒤 서로마가 멸망하기까지인 약 100년 동안 로마교회는나름대로 살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후 여러 미개한 부족들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로마교회와 손을 잡았는데,그중 재빨리 로마교회로 개종한 프랑크왕국은 처음부터 로마교회를 옹호하여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후 로마교회는 다른 게르만민족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성상을 세우고, 교회를 웅장하게 꾸미기 시작하며, 타 민족의 풍습을 더욱 과감히 받아들였습니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처럼 등장하는 교회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촛불, 성상숭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때 로마교회의 위상은 이때부터 하늘 높은 출 모르고 치솟았고, 급기야 506년에는 동로마 황제까지 정책적으로 로마교회를 지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로마교회의 감독을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칙령을 반포하는 한편 590년 '교황'이라는 칭호를 주었는데, 바로 천주교황이 탄생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에서 공인되었으며, 392년 데오도시우스 황제 때 국교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기독교의 권위를 유지한 배경은 프랑크 왕조의 개종과 제휴입니다.
프랑크 왕조의 클로비스는 정통가톨릭으로 개종하였으며, 카룰루스마르텔이 732년 이슬람 세력을 투르와 푸와티에 전투에서 격퇴하면서 유럽을 지킬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피핀은 로마교황령을 기진하였으며, 칼롤루스 대제는 서로마 황제의 제관을 받았습니다. 이는 오히려 기독교가 유럽 전지역으로 확산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