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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거북이38
활달한거북이3823.10.16

조선시대에도 통행금지가 있었나요?

전근대적 시대까지 통행금지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1945년 9월부터 37년간 계속된 야간 통행금지조치가

1982년 1월 5일 해제되었다고 하던데,

조선시대에도 통행금지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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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통행 금지가 있었습니다.

    순작법이라해서 야간에 군사들이 복장을 갖추고 호령을 하면서 거리를 순찰을 했다고 합니다.

    국경 부근과 도성의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였습니다. 통행을 금지하는 시간은 오후10시 30분에서 , 오전4시 30분까지였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0.1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통행금지가 있었다고합니다.

    조선시대에 통금이 시작되는 시간을 인정, 끝나는 시간을 파루라고 했다로합니다. 통금이 시작되는 시간 인정이 울린뒤 남성이 돌아다니려면 의원을 부르거나 군인같이 특별한 직업이 있어야 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통행금지 단속을 구지 안해도 생명 유지를 위해서 어쩔수 없이 야간 통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녁 6-7시가 되면 성문 이 닫힙니다. 그리고 대부분 마을이 성벽 안에 존재하구여

    또한 밤에는 늑대 , 호랑이 등 맹수가 길에 많이 있어서 통행금지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야간통행금지는 조선시대에도 실시된 적이 있습니다.

    전등이 발명, 보급되기 전 등불 밑에서의 생산활동은 물론 구매, 위락 등 일체의 활동이 제약받을수밖에 없었으므로 사실상 도시주민들의 밤 시간은 휴식 내지 잠자는 시간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국대전 병전 문개폐조에 궁성문은 초저녁에 닫고 해가 뜰 때 열며, 도성문은 인전에 닫고 파루에 연다 라고 했으며 행순조에는 2경 후부터 5경 이전까지는 대소인원은 출행하지 못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는 이 시간에는 높은 관료 이하 민간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의 통행을 금지한다는 것이며 조선왕조실록에 1401년 5월 처음 나오고 이때 초경 3점이후 5경 3점이전에 행순을 범하는 자는 모두 체포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떄의 기록을 미루어보아 야간통행금지제도는 그 이전부터 시행되었고 이를 더 엄하게 다스리기로 결정한 것을 알수있으며 이것이 실제 주민생활에 불편을 준 까닭인지 1458년 2월에는 두시간 대폭 단축해 2경부터 4경까지로 바뀌었고 경국대전에서 다시 바뀌어 2경 후 5경전으로 정해졌습니다.

    이것이 조선 말기까지 지켜졌으며, 만약 급한 공무나 질병, 사상 , 출산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사람은 본인이 순관 또는 경무소에 신고, 순관이나 경무소에서 사람을 시켜 통행증인 경첨을 가지고 본인의 행선지까지 보호, 연행해주고 다음날 그 사실을 병조에 보고하여 다시 그 진실여부를 조사했습니다.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은 자는 경무소에 잡아두었다가 다음날 각 영에서 곤장형을 집행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국대전에는 야간통행금지 시간을 2경~5경으로 규정하지만 남성들은 초경( 밤9시 정도)의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야했다고 합니다. 그이유는 통행금지처벌은 초경부터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경과 5(오전3-5시)경에 야금한 사람은 장 10대, 2경(밤9시-11시)과 4경(오전1시-3시)은 장 20대, 3경( 저녁11시-오전1시)은 장 30대를 맞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