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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개소문은 후계자를 제대로 기르지 못하였나요?

연개소문은 후계자를 제대로 기르지 못해서 결국 연개소문 사후에 고구려는 멸망하는데

왜 연개소문은 후계자를 제대로 기르지 못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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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시간여행자75
      시간여행자75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나 라고 하는 것보다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연개소문은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의 3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위대한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도 그러한 권력에의 욕심이 많이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주변 신하들의 그 욕심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간질로 서로 싸우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1차 고구려와 당의 전쟁 시 연개소문이 총 지휘하여 어렵게 이세민이 직접 출정한 당을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2차 고구려와 당의 전쟁 시에는 연개소문인 장자인 연남생에게 군사를 내어주고 총 지휘하여 압록강을 넘지 못하게 막으라고 하였으나 전투 지휘 경험이 적었던 연남생은 압록강을 내어주고 당군이 평양성까지 밀고 내려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직접 참전하고 장기전으로 이끌어가면서 당의 보급을 끊어버리는 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신라 역시 백제의 잔존 세력이 있어 쉬이 군사를 고구려로 보낼 수 없었습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연개소문은 총공세를 시작하였고, 보급이 끊어져 힘들어하던 당은 퇴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로서 2차 고구려와 당의 전쟁에도 고구려가 승리하였습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이후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연개소문이 있는 한 고구려와 절대 대적하지 말라고 하였고, 이에 당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최대 종교행사인 태산봉선에 고구려와 신라, 일본까지 초청하여 우호관계를 가지고 갑니다.

      그러던 중 그간 전쟁의 상처와 노환으로 인해 연개소문이 사망합니다. 유언으로 연개소문은 삼형제에게 절대 싸우지 말고 잘 도와가며 국정을 운영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연개소문 사후에 그가 맡고 있던 대막리지 벼슬을 장자인 연남생이 이어받았고 연남건, 연남삼에게도 고위 관직을 이어받았습니다. 절대 권력자이던 연개소문이 죽자 주변의 호족들은 아들들에게 줄을 대어 권력을 이어나가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연씨 가문이 계속 권력을 이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연남생이 지방 순방을 하던 중 두 동생들을 죽일 것이라는 이간질을 하여 연남건, 연남산이 형인 연남생을 공격하여 평양성을 장악하고 관직을 빼앗아 버립니다. 이에 연남생은 고구려를 버리고 당에 망명해버립니다.

      이에 666년 당이 다시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침공하게 되었고, 연남생을 앞세워 고구려의 정보와 공략방법을 연구한 당이 평양성을 손쉽게 얻게 됩니다. 연남생은 자신이 관리하던 성을 당에 바쳤고, 당은 그 곳을 거점으로 하여 추운 겨울 보급 걱정없이 주둔하여 평양성을 공략했던 것입니다.

      당시 고구려와 1:1로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주변 국가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내부적으로 먼저 무너졌고 그 틈을 타 당과 신라가 3차 공격을 하여 결국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역사는 다시 대중상과 대조영에 의해 대진국 발해로 더욱 융성한 국가로 발전하였으니 그 명맥이 끊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후 고려도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라는 뜻으로 국호를 정하였으니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개소문과 같은 경우에는 특정 아들에게 권력 등을 밀어주지 않았고

      독식하였으며 이에 따라서 추후에 후계자 싸움이 발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