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충흔 전문가입니다.
루비와 사파이어는 모두 산화 알루미늄 결정인 코런덤이라는 동일한 광물에서 시작하지만, 결정 격자 속에 아주 미량으로 포함된 전이 금속 이온의 종류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색을 띠게 됩니다. 산화 알루미늄 자체는 본래 무색투명한 결정인데, 알루미늄 이온이 있어야 할 자리에 크로뮴이나 철, 타이타늄 같은 전이 금속 이온이 불순물로 치환되어 들어가면서 보석 특유의 색깔이 나타납니다.
이 현상의 핵심은 전이 금속 이온이 가진 d-궤도의 에너지 변화에 있습니다. 전이 금속 이온은 에너지가 같은 다섯 개의 d-궤도를 가지고 있는데, 결정 격자 안에서 주변의 산소 이온들에 둘러싸이면 그 전기적인 반발력으로 인해 d-궤도의 에너지 수준이 두 그룹으로 분리됩니다. 이를 d-궤도 갈라짐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때 갈라진 두 궤도 사이의 에너지 간격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에너지 영역대와 정확히 일치하게 됩니다.
루비의 경우에는 크로뮴 이온이 불순물로 작용합니다. 크로뮴 이온에 의해 형성된 d-궤도 갈라짐 에너지는 가시광선 중 녹색과 노란색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크기를 가집니다. 따라서 루비를 통과하는 백색광 중에서 녹색과 노란색은 흡수되어 사라지고, 남은 붉은색 파장의 빛만이 우리 눈에 도달하여 붉게 보이게 됩니다.
반면 사파이어는 철과 타이타늄 이온이 불순물로 들어갑니다. 이 이온들이 결정 내부에 존재하면 d-궤도 갈라짐과 이온 간의 전하 이동 현상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면서, 루비와는 다르게 노란색과 붉은색 계열의 빛을 집중적으로 흡수합니다. 그 결과 흡수되지 않고 살아남은 푸른색 파장의 빛만이 결정 밖으로 빠져나오게 되어 우리 눈에는 깊고 푸른 사파이어로 관측되는 것입니다. 결국 보석의 색은 투명한 격자 속에 숨어든 전이 금속이 어떤 파장의 빛을 선택적으로 흡수하고 남기느냐에 결정되는 물리적 결과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