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시대에 전쟁을 통해 또는 상대방의 수도까지 들어가서 왕을 죽인 사례가 있는데 왜 복속까지는 시키지 않았던 건가요?
삼국 시대의 전쟁 상황들을 보면 간혹 상대 국가의 왕을 죽인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왕을 죽인 후에 왜 해당 국가를 복속하려는 시도까지는 하지 않았었나요?
지금의 통치의 개념과 당시의 국통의 개념에 차이에서 차이가 있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한국 고대 국가들인 삼국사이에서 서로의 왕을 죽이기까지 한 전쟁은 몇차례 있었습니다.
고구려 고국원왕이 백제의 태자 근구수가 이끄는 군사에게 화살을 맞아 전사하거나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무장들인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에게 전쟁중 붙잡혀 참수당한 적도 있습니다.
백제 성왕은 신라 문무왕의 군대에게 사로잡혀 참수를 당했구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게 왜 나라까지 정복하지 않았냐 의문이실수 있는데 그것은 삼국간의 항쟁에서 나라까지 합병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당나라또한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웅진도독부, 안동도독부는 물론 신라까지 집어삼키기 위해 계림도독부를 두었으나 각지에서 일어난 독립전쟁으로 큰 손실을 보고 결국 손을 떼게 되었죠. 그후 만주쪽에서도 발해가 들어섰구요.
당나라 사례를 보면 만약 삼국중 다른 나라를 멸망시켜서 합병한다해도 그곳에 군사를 주둔시켜야하고 게릴라적인 독립군과 싸워야하기 때문에 기를 꺾어놓는 정도로 계속 우위를 점하는 선에서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의 장수왕은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은 한성을 탈출하여 수도를 웅진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백제를 멸망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백제가 웅진의 지형을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고구려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그리고 신라가 백제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방어했습니다. 또한 고구려의 내부 문제와 중국의 북위와의 관계도 있어 백제를 공략을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