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왕후의 질투는 무슨일 때문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실록에 태종이 중궁의 투기 때문에 경연청에 나와서 10여 일 동안 거처하였다고 나와 있는데요.
왕이 침전을 옮길 말한 원경왕후 질투는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경왕후는 1차왕자의 난이 성공한 후 왕후가 된것으로 아는데요. 실제로 태종의 중국인 이씨와 원경왕후 민씨는 태종의 축첩과 후궁을 들이는 문제로 크게 다투었다고 합니다. 1401년(태종 1년), 태종이 어떤 궁인을 가까이하자 분노한 원경왕후가 궁인을 따로 불러내어 힐문하였고 이를 안 태종이 노하여 원경왕후전의 시녀와 환관을 내쳤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태종과 민씨 사이는 계속해서 불화가 지속되었는데요.
태종이 여러 후궁을 두는 것은 권력 분산과 왕권 강화를 위한 전략이었지만, 이에 대해 민씨는 공개적으로 불평하고 비난했습니다. 태종의 네 명의 처남이 처형된 이후, 태종과 민씨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민씨는 태도가 오만하고 불손하며 폐비의 위기까지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태종은 후일을 걱정하여 폐비를 버리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 태종이 왕이 되기 이전, 원경왕후가 사가에서 거느리던 몸종이었던 김씨가 태종의 첩이 되어 낳은 태종의 첫번째 서자입니다.
1395년에 출생하였으므로, 태어난 순서로만 따지자면, 효령대군보다 형입니다.
애초에 김씨가 경녕군을 낳았을때 원경왕후가 이를 질투하여 김씨와 경녕군을 차가운 날씨에 얼어죽게 학대한 것을 태종이 직접 거두어 살렸다고 합니다.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의 5왕을 섬겼으며, 우애가 뛰어나고 충성스러운 왕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종2년에 외조부인 김점이 비리사건에 연루되면서,
태상왕 태종이 경녕군의 어머니인 숙공궁주 효빈김씨를 사가로 쫓아버리는 바람에, 그 자신도 왕실족보인 '선원계보록'에서 누락된 비운의 왕자이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종과 중궁 사이에 투기가 발생한 기록이 실록에 있습니다. 중궁의 질투로 인해 태종은 경연청에 나와서 10일 동안 거처하게 되었습니
다. 질투의 구체적인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중궁이 다른 후궁들과의 경쟁과 불만을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왕실
내부에서의 권력과 지위에 관련된 문제로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