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상록수 부대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육군 상록수 부대'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이름을 '상록수'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상록수부대 파병배경
동티모르 독립과 인권회복을 위해 운동을 한 공로로 '96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카롤로스 벨로주교등의 노력으로 동티모르의 인권문제가 부각되면서 동티모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99년 8월 30일 UN의 관리아래 독립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결과 주민의 78.5%가 독립에 찬성하자 독립에 반대하는 민병대와 주민들간의 유혈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99년 9월 15일 동티모르에 국제평화유지군의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인도네시아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으며, 우리 정부에 공식적인 파병을 요청해왔다.
△ 상록수부대 파병경과
'99년 9월 16일 뉴질랜드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 정상회담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인권수호를 강조하면서 UN의 요청을 전제로한 평화유지군 파병을 전격 발표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99년 9월 21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동티모르 파병안이 통과되었으며, 9월 22일부터 4일간 국방부 정보본부장이 인도네시아 현지 조사기간중 당시 인도네시아 국방장관 및 통합군사령관을 만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면 전투부대를 파병해도 절대 안전하다"라는 확답을 받았으며 9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파병안이 확정되었다.
△ 상록수부대 파병의의 및 성과
'99년 9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투부대 파병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전투부대 파병안을 놓고 찬·반 양론이 뜨거웠다.
2만명이 넘는 인도네시아 교민과 한국 기업체의 안전, 양국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어었다.
이처럼 상록수부대는 국민의 신뢰와 자부심,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 신중한 작전이 요구되었다.
인도네시아 교민의 안전, 독립 지지파와 반대파간의 중재 역할을 통한 치안유지활동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것인가가 커다란 과제였다.
이번 동티모르 사태는 현지사정과 치안유지 상태를 고려할 때, 전투부대를 파병하는 것이 바람직하였다.
왜냐하면 평화유지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이므로 이러한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평소 교육훈련 수준이 높은 전투부대 파병이 적절하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이나 국제 공헌도 측면에서 보더라도 의무, 공병부대는 고가의 추가적인 특수물자를 갖추어야 하는 반면에 전투부대는 편제장비로써 효율성 높은 임무수행이 가능하며, 또한 평화유지 활동중 전투부대에 의한 임무가 가장 높게 평가되는 만큼 국제공헌을 높일 수 있고 국위선양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상록수부대의 전투부대 파병은 국제 공조체제의 동참을 통해 국제협약 기반을 공고히 함으로써 우리도 유사시 UN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을 축적할 수 있고 우리 군을 세계화시켜 나갈 수 있는 동시에 그 우수성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육군 상록수 부대 > 평화 유지활동 차원에서 1993년 소말리아에 한국군 최초로 참가한 후 1999년 동티모르에 파병된 부대 입니다.
1993년 7월 부터 1994년 3월 까지 소말리아에 공병대대로 파견됨으로써 한국군 최초로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해 도로보수공사 및 주민 지원 활동을 수행을 마쳤습니다.
1999년 9월 16일 유엔은 우리 정부에 파병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동티모르에 대해 국제 사회 개입을 주장하며 의상을 적극 피력 하였습니다.
9월 29일 육군 일반명령 제132호에 의거 육군 제522 평화유지단이 창설 되었으며 부대 별칭은 동티모르 상록수 부대로 명명 하였습니다. 부대 임무는 책임지역 안정화와 인도적 구호 등 평화유지 활동 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록수부대는 1993년 7월 소말리아에 잠시 파병된 적이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유엔 PKO부대였습니다. 이 부대 명칭은 1999년 10월에 파견된 동티모르 상록수부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흔히 상록수부대 하면 동티모르에 파견되어 4년간 활동한 부대를 지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상록수부대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 동의 부대와 다산부대, 이라크에 서희부대와 제마 부대 등이 파견되어 한국군 출신 평화유지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대명을 상록수라고 한 이유는 아마도 늘 푸르는 나무라는 의미를 가진 상록수같이 항상 어려운 상황에서도 푸르름을 유지하다는 의미가 들어 있을 것 으로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91년 대한민국은 유엔에 가입하고 평화유지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소말리아에 진행된 제 2차 유엔 소말리아 임무에 건설공병대대 252명을 파병했습니다. 1993년 7월 창설되어 소말리아에 도착한 상록수 부대는 소말리아 평화유지활동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도로를 보수하고 민사 활동에 착수, 1994년 3월 15일 철수했습니다.
이 부대 명칭은 1999년 10월 파견된 동티모르 상록수부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흔히 상록수부대 하면 동티모르에 파견되어 4년간 활동한 부대를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제연합은 분쟁의 억제를 위한 군사력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평화유지군을 결성할 수 있다. 국제연합의 동티모르 PKO(peace-keeping operation: 평화유지활동)에 호응하여 한국도 1999년 10월 동티모르에 상록수부대 419명을 파견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록수’라는 이름은 '상록수 부대’가 파병되기 전에 국방부에서 지어진 것으로, 상록수는 겨울에도 푸른잎을 유지하는 나무를 말하는데요. 이런 의미를 빌어 영원히 푸르른 나무로서 평화유지군의 영원한 평화를 상징하기 위해 지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상록수 부대는 1993년 7월 소말리아 파병되었으며, 이후 앙골라와 동티모르에도 파병되었던 한국의 평화유지활동을 위한 부대였습니다. 당시 국제연합에서 여러 세계분쟁을 중재하기 위한 군사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평화유지군을 결성하게 되었는데요. 이런 국제적 요구에 맞춰 한국역시 동티모르에 상록수부대 419명을 파견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상록수 부대는 치안확보및 구호품 전달 같은 인도적인 활동을 통해 동티모르같은 분쟁지역의 주민들의 삶의 복구를 위해 지원하는 평화부대로 활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