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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을지로는 왜 골뱅이가 유명한 것인가요?
서울 중구의 을지로에는 골뱅이 거리가 있을만큼 골뱅이가 유명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을지로가 골뱅이와 어떤 관련이 있길래 유명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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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리운푸들64입니다.
을지로 골뱅이는 이 을지로 인쇄 골목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을지로 골뱅이의 전통을 잇는다는 가게들은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일대에 몰려 있다. 원조임을 주장하는 한 가게는 1960년대 말에 지금 형태의 골뱅이를 처음 냈다고 말한다. 주변 상인의 말을 들어보면 그즈음에 골뱅이무침이 탄생한 것은 맞는 듯하다. 단, 그때에는 아마 맥주보다는 소주나 막걸리의 안주로 팔렸을 것이다.
을지로 골뱅이는 여느 생맥주집의 골뱅이무침과 다르다. 파채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만 들어간다. 북어채도 곁들여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골뱅이와 양념한 파채를 따로 내기도 한다. 여느 생맥주집의 골뱅이무침은 어떠냐 하면, 여기에 식초·설탕 또는 고추장이 첨가된다. 을지로 골뱅이 가게에서는 식초·설탕 등을 넣지 않아야 골뱅이 맛이 살아 그렇게 조리한다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을지로 골뱅이는 완성된 요리가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통조림을 따서 그대로 내놓기는 민망하니 대충 양념을 한 음식이라는 기분이 든다. 이 대충의 양념법에 을지로 골뱅이의 역사가 숨어 있다.
을지로 골뱅이는 원래 구멍가게에서 내놓던 메뉴였다. 요즘은 구멍가게가 많이 사라져서 이런 풍경을 보기 어려운데, 가난한 노동자들이 이런 구멍가게에서 한잔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식탁이 없으면 계산대 위에 술과 안주를 놓고 서서 먹었다. 식당에서 파는 술에 비해 구멍가게의 술이 한참 싸니 이랬던 것이다. 안주도 필요할 것이었는데, 그래서 구멍가게 계산대 옆에는 땅콩·멸치·오징어·북어포 같은 마른안주가 늘 놓여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그 구멍가게 한 귀퉁이에 진열되어 있는 골뱅이 통조림을 발견했을 것이고, 이것으로도 안주를 삼았을 것이다.
애초 골뱅이 통조림은 일본 수출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 조리법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추어졌고, 따라서 들척지근한 맛이 난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구멍가게 주인에게 매콤한 양념을 부탁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파채까지는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고춧가루와 마늘 정도만 넣고 이를 안주로 삼다가, 서비스로 파채도 넣고 통조림 국물이 아까우니 여기에 북어포를 더하고 하면서 지금의 을지로 골뱅이 조리법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1970년대 을지로 인쇄 골목은 민주화운동에 한몫을 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무기로 인쇄물이 적극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좁은 골목의 인쇄소에서 밤새 ‘피’(반정부 유인물을 그리 불렀다)가 제작되어 대학가 등지에 뿌려졌다. 민주화운동에 ‘문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대학생 등 젊은 지성은 확인했다. 1980년대 들면서 이 경험은 출판문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을지로에 젊은 지성이 모여들었다.
인쇄 노동은, 지금도 그렇지만, 무척 고되다. 그 작은 활판에 눈은 침침해지고 그 무거운 종이에 등이 휜다. 인쇄 단가는 낮아서 밤을 새워 일하지 않으면 밥을 벌 수가 없다. 그 거친 노동판에 젊은 지식노동자들이 섞였다. 구멍가게의 그 술판에서도 섞였다. 1983년 지하철 2호선 을지로 구간이 완성되면서 그 주변으로 오피스타운이 형성되었다. 이들 직장인도 을지로3가의 구멍가게를 넘보았다. 을지로에 새롭게 진입한 이들 ‘배운 젊은이’는 을지로 골뱅이에 대해 입소문을 냈고, 순식간에 서울의 명물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여름이면 을지로 구멍가게 앞은 골뱅이에 맥주를 마시는 사람으로 빼곡했다. 더 많은 손님을 받으려는 이들이 골뱅이 전문점을 열었다. 간판에는 ‘을지로 골뱅이’라 써서 붙였다.
을지로 골뱅이 전문점에는 더 이상 인쇄 노동자들이 들락거릴 수 없다. 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 골뱅이를 파는 구멍가게가 있기 때문이다. 겉은 ‘24시 편의점’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탁자 두어 개가 놓여 있고, 여전히 골뱅이를 판다. 이 구멍가게는 을지로의 가난한 노동자가 아니면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을지로의 외지인’은 원조라고 각자 주장하는 그 골뱅이 전문점으로 가서 그 대충 요리한 듯한 골뱅이에 맥주를 마신다. 그들은 그 대충의 양념법의 근원이 구멍가게에서 비롯한 것임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양념법을 말하며 사라져간 그 구멍가게를 추억한다. 을지로의 그 꼬불꼬불한 골목에서는 여전히 인쇄 기계가 밤새워 돌고, 구멍가게의 골뱅이도 여전한데.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기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