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사일러스
사일러스

고려시대의 영업전은 어떻게 변화했나요?

고려 거란 전쟁에서 김훈.최질의 난이 소개되었고,

영업전에 대한 불만이 반란의 원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반란이 진압된 이후에는 영업전은 어떻게 개정되었나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시과는 영업전과 구분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영업전은 관직과 직역이 계승되는 한 회수되지 않고 해당 가계에 계승되는 토지였습니다. 그러나 불법적으로 세습되는 영업전도 존재하였으며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거란전쟁 25회에서는 중추사 장연우가 무신들의 영업전이 세습되는 관행을 타파하고 부정하게 세습된 것을 회수하여 녹봉으로 충당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훈과 최질은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조정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현종은 무관들의 생계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마련한 후 회수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이후에도 영업전에 대한 개정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훈최질 난은 고려시대 말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민란 중 하나로, 영업전(永業田)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고려 조정은 영업전을 폐지하고 대신 새로운 토지 제도인 '전시과'를 제정하였습니다. 전시과는 경종 때 처음 실시되어 목종 때까지 수정·보완되었으며, 문무관리로부터 군인, 한인에 이르기까지 18등급으로 나누어 곡물을 수취할 수 있는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주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영업전과 달리 토지의 소유권이 아니라 수조권(收租權)을 지급하는 제도였습니다. 즉, 관리들은 받은 토지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었지만 토지 자체는 국가나 개인 소유였습니다. 그러나 전시과도 점차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어 무신정권 시기에는 붕괴되었으며, 이후 몽골 간섭기에는 권문세족들이 대토지를 차지하게 되면서 고려의 토지 제도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업전이 사료에 처음 보이는 것은 1014년(현종 5)의 일로, 백관주의 녹봉이 부족해지자 경군(京軍)의 영업전을 빼앗아 충당하도록 하였다는 기사인데 이 사건으로 무반과 군인들의 반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경군의 영업전이란 곧 전시과로 지급된 구인전을 뜻합니다. 또한 숙종~인종 대 인물인 이영(李永)이 경군이었던 부친의 영업전을 물려받기 위하여 서리가 되려고 하였다는 자료를 통해서 군인에게 지급된 영업전이 곧 서리가 받는 토지와 동일하다는 사실이 확인 됩니다. 영업전은 전시과 및 공음전시로 간주되므로 이들과 마찬가지로 고려 후기에 들어서면 점차 유명무실화되었습니다. 국가의 관리 아래 지급되었던 토지는 점차 개인의 사유지화 되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영업전이라는 표현 대신 조업전(祖業田)주10이라는 용어도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