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 때 전성기이나 문자왕 시기 북부여를 복속함으로 초대 영토를 확보했다는 논란이 있습니다. 북부여가 주요 대상으로 494년경 물길의 침입으로 쇠퇴한 북부여를 흡수해 송화강 유역까지 세력을 미쳤습니다. 이는 장수왕의 남진과 결합해 최대 영토 확보라는 논란이 생긴 것으로 판단됩니다.
장수왕 때 남진, 요동, 만주 대부분을 장악한 전성기와 달리 문자명왕은 북부여를 병합으로 북방 영토로는 영토 확장이 두드러지나 남북 장악력이 약화되어 쇠퇴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