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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4.23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라는 말이 생긴 일화가 뭔가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라는 말은 어떤 일 때문에 나온 말인가요?

삼국지의 제갈량과 사마의의 이야기인건 아는데 무슨 일화 때문에 생긴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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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죽은 공명, 산 중달을 물리치다라는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갈량은 "죽고 사는 것은 천명(天命)"이라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심복 장수들을 불렀다. 제갈량은 장수들에게 전쟁에 관한 책들과 무기의 설계도를 물려주고, 또 위연과 다툴 대책을 알려 주었다. 비록 유비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위연을 살려두기는 하였지만, 제갈량은 그의 머리에서 본 반골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장수들에게 자신이 죽은 뒤 사마의의 추격을 뿌리칠 방법을 일러주었다. 마지막으로 황제 유선에게 편지를 보낸 뒤 막사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54세, 시골의 오두막을 나서 천하에 이름을 떨친 지 25년 남짓, 결국 한(漢)나라의 부흥이라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였다.

    제갈량의 예상대로, 제갈량이 죽자 위연은 다른 장수들과 뜻을 달리하게 되었다. 나머지 장수들은 위연의 부대를 남겨둔 채 퇴각하고, 위연은 어제의 동지를 향해 칼끝을 돌려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한편 사마의는 밤에 하늘을 살피다가 커다란 별 하나가 붉은 빛을 띠더니 긴 꼬리를 남기며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떨어지는 쪽은 바로 촉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곳. 사마의는 기쁜 마음에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드디어 제갈량이 죽었구나!"

    그러나 제갈량의 육정육갑의 도술을 두려워 한 사마의는 즉각 군사를 동원하여 추격에 나서지는 못하였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틀림없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자 두 아들과 함께 퇴각하는 촉군을 추격하였다. 그런데 산모퉁이를 돌자 달아나던 촉군이 갑자기 돌아서 사마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진두에서 지휘하는 수레에는 '한승상 무향후 제갈량(漢丞相 武鄕候 諸葛亮)'이라고 쓰인 깃발이 꽂혀 있고, 제갈량이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사마의가 급히 말고삐를 돌려 도망치려는데, 뒤에서는 강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적장 사마의는 꼼짝 마라! 너는 이미 우리 승상님의 계략에 빠져 버렸다!" 혼비백산한 사마의와 위나라 병사들은 얼이 빠져 앞을 다퉈 도망쳤다. 쉬지 않고 15킬로미터 이상을 도망치던 사마의를 장수 둘이 달려들어 겨우 진정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뒤 이틀이 지나서야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제갈량이 정말로 죽었으며, 수레에 깃털부채를 든 채 단정히 앉아 있던 것은 제갈량이 아니라 나무 인형이었음을 알게 된다. 사마의가 "살아 있는 사람 같으면 계략에 빠지도록 할 수 있으나 죽은 사람은 나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탄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 뒤로 촉의 사람들은 '사제갈주생중달(死諸葛走生仲達)' 즉, "죽은 공명이 산 중달(사마의의 자)을 물리쳤다"고 말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기다 - 장수 유전자는 북두칠성 아래에 (삼국지 사이언스, 2015. 4. 10., 김태호, 이정모, 황기홍)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는 이야기는 최초로 등장한 것은 사서인 한진춘추 입니다.

    오장원 전투에서 제갈량이 죽고 촉한군이 퇴각하자 사마의 는 드디어 공명이 죽었으니 기회가 왔다고 판단, 추격하여 격퇴하려했으나 제갈량이 죽기 전에 파 놓은 계책으로 인해 놀라 퇴각하고 겁에 질려 영채에 틀어박혀있다가 한참 후에 제갈량이 정말로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제갈 공명이 사망했는데, 이를 본따서 나무로 제갈 공명과 비슷한 조각상을 만들었는데(즉, 공명은 이미 사망한 후) 이를 중달 사마의가 보고서 '어, 공명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았었네?'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패퇴하게 하였다는 일화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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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의 삼국지연의 중 제갈공명과 사마의의 싸움에서 유래된 말이다.

    유래가 되었던 중국 본토는 말할 것도 없고, 타국인 조선이나 일본의 문서나 기록에서도 자주 인용되었던 문구이다. 보통은 공명 쪽을 부각하여 뛰어난 사람, 지략, 장수 등을 나타내지만 사마의 쪽을 부각하여 겁쟁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조금 응용해서 진짜로 사망한 사람이 아니라 일선에서 물러났거나 모종의 사유로 몰락한 사람이 자신을 몰락시킨 사람의 발목을 잡았다든지, 스포츠의 경우 그날 출전하지 않거나 퇴장당한 선수가 상대팀의 기세를 꺾어놓는 등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상황이 아닌 사람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묘사할 때도 종종 사용한다.


    조선왕조신록에선 "사순신차생왜"

    죽은 이순신이 산 왜놈을 물리쳤다. 라고 쓰이기도 했단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BC 234년 촉(蜀)나라의 제갈공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위(魏)나라의 사마중달과 오장원에서 대치하던 중 자신의 죽음을 예감 하였다고 합니다. 제갈공명은 운명하기에 앞서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는 물론 아군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고 자신의 모습을 본뜬 좌상을 만들어 수례에 앉혀살아서 지휘하는 것처럼 보이게하라는 조치를 취해놓고 곧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촉나라의 군사는 할수없이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 라고 한 말과 같은 이치 같습니다. 죽은 이순신 장군이 살아있는 왜군을 이긴것 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