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가 조서 백자로 변화되는 과정은 중국의 영향이 있었지만 이미 고려말 도자기 변화 과정에 따른 것으로 판단됩니다. 고려 후기 이미 청자 이외에도 분청사기, 백자도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청자는 불교와 귀족적이며, 궁중과 귀족층에서는 여전히 선호했지만 사대부들은 소박, 검소, 실용을 중시여겼습니다.
조선 건국 이후 불교 중심의 고려 문화 대신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사대부들의 검소함과 실용성이 반영된 백제가 시대 정신에 맞았던 것입니다.
즉, 원명 교체시기가 고려, 조선의 교체 시기가 맞물려 있어 청자와 백제의 전환과 연관된 측면도 있지만 이미 백자가 제작 유통되었으며, 백자가 조선 건국을 주도하 사대부들의 취향과 부합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