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신라말기에 풍수지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유입이 되었나요?
신라 말기에 풍수지리설이 들어왔다는 것은 한국사에서 배웠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서 도입되었나요?
그 당시에도 역관 등이 존재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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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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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
신라말 도선국사가 중국의 당나라 일행선사에게 전수받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됐다는 설이 있으나 『三國遺事』의 내용에 보면 신라의 4대 탈해왕이 집터를 잘 잡아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초기부터 풍수학이 이미 응용되고 있었다고도 합니다.
도선 즉 스님이 풍수지리 대가라 했으니역관이라 하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판단 됩니다.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신라 말기에 풍수지리가 한반도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지식이 신라로 전파되는 와중 풍수지리학에 대한 개념이 들어왔고
당시 역관들도 존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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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말 풍수지리설은 선종 승려 도선이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영향력을 키워가던 선종의 동리산문에 속한 선승입니다. 신라 말기 풍수리지설은 신라의 도읍 경주를 대신할 새로운 지역의 정치적 부상을 예언함으로써 신흥 지방 호족들의 정치적 이해를 이념적으로 뒷받침하였습니다. 결국 풍수지리설은 도참 사상과 연결하여 당시 왕조 교체를 둘러싼 사상적 쟁점의 중심으로 부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