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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2.01

노비 출신 승려 신돈이 공민왕의 스승이 어떻게 된 건가요?

고려 말의 신돈은 옥천사의 노비였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승려가 되었으며, 노비 출신 승려가 어떻게 고려 왕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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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돈의 어머니는 계성현(현재의 창녕) 화왕산 옥천사의 사찰 여종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어릴때 부터 중이 되었지만 사찰 여종의 아이었기에 중들 틈에도 끼이지 못하는 중이었습니다.

    신돈이 어떤 연유로 왕실과 접촉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신돈이 공민왕을 처음 만나게 된 시기는 1358년(공민왕 7년)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공민왕이 귀족 집권층들에게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인물을 통해 제2의 개혁정치를 펼치려던 중이었습니다.

    이런 공민왕의 새로운 계획에 적합한 인물이 바로 신돈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돈과 같은 경우 김원명의 소개로 공민왕이처음 그를 만났을 때 꿈속에서 본 승려와 행색이 비슷하여 마침내 그를 신임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노국대장공주 승하 뒤 공민왕이 정치에 뜻을 잃자 공민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정치 전면에 나섰던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사》에서는 신돈의 법명, 출신지, 어머니의 신분만 적고 아버지에 대해 적지 않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고려사》에는 없지만 영산 신씨(靈山 辛氏)의 신예(辛裔)라는 인물이 신돈의 아버지 또는 형이라는 설이 있다. 어머니는 계성현(桂城縣)은 옥천사(玉川寺)의 노비였는데 어린 나이로 출가를 하여 승려가 되었다. 승려가 되고 공민왕과 만나기 이전까지 뭘하고 살았는지는 《고려사》에 기록이 없다. 다만 고려 말의 학자 이달충이 신돈을 비판하는 시를 지은 바가 있는데 그 시의 각주에 매골승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매골승'은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하는 승려'라는 의미로 미천한 신분의 신돈은 남들이 꺼리는 일로 생계를 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공민왕에게는 명덕태후 홍씨에 의해 소개되었는데 야사에 따르면 공민왕이 꾼 꿈에서 자객을 만났는데 승려가 나타나 자객을 없애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원명의 소개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꿈속에서 본 승려와 행색이 비슷하여 마침내 그를 신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국대장공주 승하 뒤 공민왕이 정치에 뜻을 잃자 공민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정치 전면에 나섰다. 이 때 그는 법명인 '편조'(遍照)를 버리고 환속하여 신돈으로 개명했다. 기록상으로는 신돈이 어떻게 공민왕과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매우 부실한데 《고려사》나 야사의 기록만 보면 신돈이 요승이라 공민왕을 미혹했다는 식으로 나오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보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미천한 신분인 그가 왕에게 소개될 정도였다면 뭔가 그가 세간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래서 일각에서는 혼란한 고려 말기에 민중들 사이에서 불교 운동을 일으켰고, 상당한 추종 세력을 거느렸던 것이 아닌가란 추측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야사의 기록에 착안해서 신돈이 공민왕 시해 음모를 포착해 김원명을 통해 이를 고변했고, 공민왕과는 이를 계기로 만나게 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