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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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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박문수는 정말 어떤사람이었나요?

흔히 박문수라는 암행어사는 이름은 알지만 그가 이룬업적이나 활약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바가 없는데요 박문수의ㅠ업적과 활약은 뭐가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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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문수는 강직하고 청렴한 암행어사,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인, 능숙한 정치적 판단력을 가진 정치가,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23년 병과에 급제하여 사관이 되었고, 영남암행어사, 분무공신 2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이후 병조판서, 호조판서, 예문관제학, 지성균관사,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박문수는 강직하고 청렴한 성격으로 유명했으며, 조선 후기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 박문수는 정작 암행어사로 파견된 적이 없었습니다. 박문수는 소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총명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나랏일을 할 때 당파를 뛰어넘어 판단하는 모습을 보고 영조는 탕평책에 어울리는 인재로 생각했습니다. 박문수는 영남지역에 암행어사가 아닌 어사로 파견되었습니다. 영남지역에 가서 본 것은 극심한 흉년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가슴이 아픈 나머지 자신의 곡식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정의 대신들에게도 곡식을 내놓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영조는 박문수의 보고로 관리들의 월급을 줄여들백성을 구제하는데 씁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문수는 영조 대 소론계 당인이면서도 항상 공적인 입장을 우선시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실무에도 밝아 국가의 재정이나 군사 부분 개혁을 주도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27년 관직에 올라 암행어사가 되어 조선시대 때의 암행어사는 많은 권력을 가지고있었기에 왕이 직접 선택하여 지방에 파견을 하여 관리들이 부정을 저지르나 백성들이 잘살고 있는지 재판은 잘 이루어지는지 등을 감시하는 등의 많은 일들을 박문수는 슬기롭게 수행하였습니다. 1728년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때 박문수가 잘 진압하여 그 업적으로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