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가 통합자인 근거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는 330년 다리우스 3세 사후 페르시아 복장, 궁정 절차, 의전관 제도를 받아들였고, 327년 프로스키네시스 도입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인을 샤프라프와 친위기병대에 임병하였습니다. 또한 324년 수사 대혼례에 알렉산더와 장교 80명이 페르시아 귀족 여성과 결혼하고, 병사 1만명의 아시아 여성과 결합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파괴자의 모습도 있습니다. 테베는 판다로스의 집만 남기고 완전히 파괴되었고, 페르소폴리는 불탔으며, 티레, 가자에서는 주민이 대량 학살되었습니다.
그래도 통합자로 남는 이유는 의도와 결과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복은 헬레니즘 세계를 낳았고, 그리스어 통용과 간다라 불교미술 같은 혼종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학계는 "알렉산더가 융합을 계획했다"보다 "정복이 융합을 낳았다"로 정리하며, '헬레니즘화'라는 용어 자체도 재검토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