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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정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고종 때 서원이 당파싸움의 뿌리라는 이유로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의 실체가 처음 확인됐다.고종실록에 따르면, 대원군은 서원철폐령(1868ㆍ1871년)을 내려 전국의 미사액ㆍ사액서원(약 1700여곳)을 47개소(사액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를 명했다.이번 사액(1711년, 숙종37) 관산서원 사당터 조사에서는 온전히 확인된 매납시설을 통해 서원을 철폐하고 신주를 묻은 역사적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관산서원은 창녕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이자 영남5현(嶺南五賢, 김굉필ㆍ 정여창ㆍ이언적ㆍ이황ㆍ정구)의 한 분으로 숭앙(崇仰)된 영의정(추증) 문목공 (文穆公) 정구(鄭逑, 1543~1620년)를 기려 그가 사망하자 세운(1620년, 광해군12)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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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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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때 미국이 조약을 무시하고 무력개입을 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과 미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항의와 조선의 강제 개항을 목적으로 1871년 미군이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이다.미국은 일본을 강제 개항시킨 흑선 사건을 통해 포함외교(gunship diplomacy)를 한 뒤, 조선도 마찬가지로 수월하게 개항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판단에는 조선군의 전투력이 별볼일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했는데, 맞는 사실이었으나 순순히 문을 연 일본과는 달리 격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약탈군을 이끄는 로저스 제독도 당황했다.배 구경만 시켜주었을 뿐인데 알아서 오픈한 일본의 선례도 있으니 행동 개시 전에 한번 찔러볼 요량으로 신미양요 발발 직전인 1871년 2월 21일에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공동 조사와 통상 요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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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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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정변에 관해 궁금한점들을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4.19혁명으로 장면총리 정부가 출범했는데, 그동안 이승만 시절에 억눌려 있던 사회불만,혼란이 폭발하면서사회가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이때 이사회 혼란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게 5.16 쿠테타의 명분입니다.또한 육사선배들은 6.25를 통해 승진(육군참모총장)을 빨리했지만 3년후배(중령)는 언제 승진할지 기약이 없어 벌어진 육사생들의 쿠테타이기도 하죠. 거기에 군 상층부의 부패도 한몫했습니다.역사적 의의는 또한번의 군사쿠테타를 가능하게 했지요. ㅠㅠ 얼마전에 반성과 사죄도 없이 죽은놈. 물론 손주가 사죄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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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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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여성들의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헌법인 ‘임시헌장’을 공표했고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임'을 천명함.1919년 4월 25일에는 ‘대한민국임시의정원법’을 공포했는데, 여기서 여성의 참정권을 선언함.중등교육을 받은 만23세 이상의 남녀 모두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했음.이건 1920년 수정헌법 19조로 여성 투표권을 인정한 미국보다 빠름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여성 참정권 인정 시기는 다음과 같음.1945년 - 일본1946년 - 중국과 북한1949년 - 인도이는 한국의 여성들이 항일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로 보는 이들이 많다.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을 발표하면서 여성의 정치참여권을 최초로 촉구한 이후 한일합병까지 체결되면서 여성들은 항일 독립운동과 함께 여성운동을 함께 전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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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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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의 자화상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윤두서의 자화상. 몸은 완전히 생략하고 얼굴만 확대하여 표현한 특이한 형식의 자화상으로 그 유례가 없다.날카로운 눈은 정면을 응시하면서 마치 자기 자신과 대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굳게 다문 두툼한 입술에서 강인한 인상이 느껴진다. 얼굴의 수염 한올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보는 이들을 압도시킨다. 일반적인 인물화들과는 달리 머리위의 탕건과 양 귀가 생략되어 있는걸로 보이고 독특한 그림이다.현재로서는 얼굴밖에 보이지 않는 그림이라서 한때는 윤두서가 얼굴만 그리고 나머지를 그리지 않은 미완성 작이거나 파격적으로 얼굴만 그린 실험작이라는 추론이 많았으나, 일제 강점기때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사료집진속" 제3권에 윤두서 자화상의 옛 사진이 실려있는데 그 사진에 보면 상반신의 윤곽이 뚜렷한 걸로 나타나 있다.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첨단 기기를 동원해 정밀 조사한 결과 상반신의 의복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생략된걸로 여겨진 귀도 붉은선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상반신 의복 윤곽이 보이지 않게 된데에는 후손들이 표구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의견이 설득력이 높다. 1960년대에 말려져 있던 이 그림을 펴서 표구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두꺼운 배지에 그냥 붙여버린 탓에 상반신의 의복 윤곽선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보라서 함부로 손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다시 표구를 한다는건 불가능하고 사진들을 보면서 실물을 감상할 때 상상력으로 결합하거나 그림을 모사한 다음에 옷부분도 같이 그려서 감상하는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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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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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선생님이 도산 서원을 지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향으로 내려간 퇴계 이황이 학문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세운 도산서당으로 시작했으며 그의 사후인 1574년(선조 7년) 제자들과 유림(선비들의 집단)이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서당 뒤편에 사당을 추가로 세웠다. 1575년에는 석봉 한호의 글씨로 된 현판을 사액받았다.엄밀히 말하자면 이황이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영역과 사후에 제자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서당 영역의 건물로는 도산서당, 농운정사, 역락서재, 하고직사 같은 건물이 있으며 서당 뒤쪽의 진도문을 기점으로는 서원의 영역이다. 서원에는 강당 시설인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 전교당(典敎堂)과 박약재, 홍의재 등이 있고 제향을 위한 시설인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기와집인 상덕사(尙德祠), 기타 부속 건물들이 있다.서원의 전교당은 보물 제210호, 상덕사와 삼문(출입문)은 보물 제211호에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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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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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화음과 협화음을 듣고 이를 인지하는 능력은 선천적인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것은 선천적인것보다 본능적인것입니다.님께서 불협화음을 듣고 불쾌하셨던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협화음에 똑같은 느낌을 받습니다.그러나 음악이 항상 협화음만 진행됐을때 과연 재밌는 감상이 될까요?인생이 어디 늘 행복하기만 합니까? 고통과 슬픔,분노와 좌절... 이런것들을 불협화음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잠깐 스쳐지나가는 불협화음(죄절,고통)을 협화음(행복,기쁨)으로 해결해주면 희열과 환희를 느낄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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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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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청자에 대해서 외국에서 굉장히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던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계 최초로 ‘자기’ 기술을 보유했던 중국. 그런데 중국이 약 천 년에 걸쳐 발전시킨 자기 기술을 고려는 불과 약 150년 만에 따라잡았다. 짧은 시간, 엄청난 노력을 통해 11~12세기에 절정을 맞은 고려청자,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데,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비색이다. 청자를 은은하게 빛내는 비색은 천하제일이라 불리며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왔다. 특히 "여러 이유로 지금도 고려의 비색을 재현할 수 없는것과 고려만의 독창적 기술도입"이라는게 외국인들이 특별히 높이사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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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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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영조가 52년간인가 통치했습니다.(1724~1776)거꾸로 가장 짧게 통치힌 왕은 인종입니다. 8개월인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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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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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어버이날인데 어머님은혜 노래는 언제 발표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 곡이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흥렬이 작곡 생활중에 주로 가곡을 많이 작곡하였던 1940년경으로 추측된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시며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의 양육을 위하여 희생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잘 묘사한 아름다운 시에 감미로운 멜로디가 어울려 어린이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애창되는 곡이다. 특히,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기념식장은 물론, 모든 가정에서 널리 불리고 있다.4분의 3박자로 된 이 곡은 전편이 잔잔하고 평범하게 흐르다가 마지막 8소절 중 앞부분 네마디의 멜로디는 강력하게 말하는 호소력을 가져, 부르는 사람과 듣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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