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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이 건설중에 시민들이 반대시위를 벌인 배경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파리의 전경을 해친다고 생각했지요.사실 지금도 에펠 탑의 조명이 다 꺼진 새벽 3시 이후에 에펠 탑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평소엔 웅장하던 에펠 탑도 이 시간대에는 숨 막힐 듯 흉물적이고 압박적이라고 한다. 조명을 끈 저녁 에펠탑의 사진을 보면 어둠의 탑인 바랏두르가 실체화된 모습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형태이며 꼭대기 부분의 항공장애등이 붉게 켜져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마왕의 눈을 떠올리게 한다.[11] 당대 건설 직후에는 지금처럼 화려한 조명장치가 없었고 해가 지기만 하면 저렇게 흉물로 변했으니 사람들의 평가가 부정적이었던 것도 이해가 가는 반응. 그럼에도 파리의 스카이라인이 낮은 편이라 도심 주변이라면 에펠 탑을 보기가 쉽다.이게 건설되기 시작하자 꼴도 보기 싫다며 정말로 파리를 떠난 예술가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대문호 기 드 모파상이었는데, 파리의 풍경을 해친다며 건설을 반대했으며, 얼마나 싫어했는지 에펠 탑이 안 보이는 방향으로 창을 낸 집에서 살 정도였고, 누군가 에펠 탑에 있는 음식점에서 자주 식사를 하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모파상 왈, "파리에서 에펠 탑이 안 보이는 장소는 이 곳 뿐일세."라고 한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다. 다만, 진위여부가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다.[12] 이후 에펠 탑 근처의 몽소 공원에 세워진 모파상의 동상도 에펠 탑과 등을 돌린 방향으로 세워졌다.다만 모파상이 에펠 탑 음식점에서 매번 커피를 마셨는지는 진위를 알 수 없지만, 귀스타브 에펠은 한동안 이 탑 3층 한 구석의 사무실에서 실제로 살았다. 이유는 상술한 대로 당대 예술가들이 하도 흉물이라고 구시렁거리니까 빡친 에펠이 그냥 사무실 겸 침실을 탑 위로 옮겨 버린 것이었다.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에펠 탑을 파리의 흉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당시 시대 자체가 석조 건축에서 철과 유리, 콘크리트 건축이 막 도입되던 시기였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당대의 파리는 석조 건물들만 즐비한 도시였으며 그 중에 홀로 이질적인 에펠 탑은 충분히 혹평 받을만 했던 것. 시간이 지나 기차역 등 많은 거대 시설들이 에펠 탑과 같은 철골 구조를 사용하여 지어지고 나서는 그럭저럭 도시 미관에 녹아 들어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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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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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국가의 해체원인은?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91년 슬로베니아 지도부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을 결정했을 당시,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간부들로 구성된 유고 인민군은 슬로베니아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긴 했으나 전의를 보이지 랂았다. 그것은 슬로베니아에서는 극소수의 세르비아인만 살고 있고, 밀로셰비치의 목적은 실은 유고슬라비아의 보존이 아니라 세르비아인을 한 국가에 모으는 것이었기 때문. 결국 슬로베니아의 독립 전쟁은 10일만에 간단한 협상으로 종결되고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궤멸적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는 해당 국가에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세르비아계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서구 좌익들은 미제국주의 폭격에 희생당한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를 변호하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 맨 처음 연방을 탈퇴한 슬로베니아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았을 때 그들이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 지도부에게 그만큼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다소 이중적이다. 왜냐하면 슬로베니아 독립파와 밀로셰비치의 리해관계는 완전히 일치했고, 그는 개량주의자로 전향한 구 노멘끌라뚜라로서 극우 민족주의 정당 급진당과의 련정까지 감수하며 자기 권좌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서구 좌익이 강조하는 잔존 유고슬라비아의 상대적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성향이라는 것도 실은 밀로셰비치 정권이 우직하게 밀고 나간 깜빠니야가 아니라, 당시 유럽의 정치적 력학관계 속에서 강요된 것이었다. 례컨대 당대 서방 지도자들이 기독교 우익 포퓰리즘을 받아들여 반이슬람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면 이제뜨베고비치가 아닌 밀로셰비치가 서구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당연히 그도 서구에 보답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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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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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수도인 일본 도쿄에 원자폭탄을 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실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일본의 최중요 도시는 도쿄와 교토였는데미국이 왜 여기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는지 좀 의문이었을 거임.쉽게 말해서 도쿄는 이미 도쿄에 대한 대공습으로 불바다로 만들어놔서 쑥대밭이 되었는데여기에 원자 폭탄을 더 투하해봐야 더이상 약빨이 안 먹힌다는 논리가 있었고,교토에는 일본의 각종 문화 유산들이 많이 있어서 원자 폭탄 투하에 반대를 했음.그래서 교토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면 일본인들의 반감만 더 살 수 있고괜한 반발심 및 반항심만 더 키울 수 있다는 논리 때문에 교토에 대한 원자 폭탄 투하는 결국무산되었다고 봐야 함. 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저 두 도시는 원자 폭탄 투하의 대상에서 비껴간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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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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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서 소프라노의 역할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프라노는 여성의 높은음역 가수로 주로 오페라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습니다.소프라노도 음색에 따라 드라마틱.리릭.콜로라투라 등으로 나누는데 그 음색에 따라 비련의 여주인공, 악한 역할, 사랑스러운 여인 등의 연기를 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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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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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교육수준이나 학력등이 다른 유럽국가에 열위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 생각에는 이탈리아의 엄청난 관광자원때문인것 같습니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져온 오랜역사동안 위대한 유물들이 산더미처럼.... 지금도 땅만파면 나오기때문에 이를 기반으로한 관광산업만으로도 국가의 90%가까운 수익을 창출하니 국민들이 굳이 학업에 열중할 필요없이 넉넉한 삶이 보장되는데 교육수준이 좋을 이유가 없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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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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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는 고대 이집트에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왕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기위해 만들어거나 또는 보허자적인 이유의 건축물로당시 왕의 얼굴로 그 머리를 만들었다고 핮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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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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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16대왕 인조가 이룬 업적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조 시대에는 농업 발전과 상업 활성화 등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문학과 예술에서도 많은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허균의 "홍길동전", 김만중의 "구운몽" 등이 있습니다.그리고 업적이라고 할수없지만 1623년 인조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등 여러 전쟁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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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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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이 왜 음악의 어머니라고 하는지 이유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정을 바로 세우는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지요!음악의 틀을 바로 세운 사람이 바로크시대의 헨델과 바흐 입니다. 그런데 바흐는 남성적 성향이 강하고 헨델은 우아하고 화려한 여성적 성향이 나타나서 음악의 어마니리고 부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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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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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10.1 사건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46년 10월 1일, 대구 지역에서 발발한 민중봉기. 영남 지역 한 가운데 위치한 대구의 지리적 특성상 인근 지역으로 파급력이 어마어마해 사실상 전국으로 번졌다.미군정의 행정 실패로 쌀값이 폭등하여 식량난과 전염병(콜레라)이 겹치자 당시 미군정은 쌀 강제 수집과 제한 배급 정책을 펼쳤고 대구에서는 굶주린 시민들의 시위가 수시로 벌어졌다. 5월 말부터는 쌀 배급과 인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벌어졌고 9월에는 부산에서 25만 명이 총파업[1]에 참가했으며, 급기야 10월 1일 저녁 대구역 앞에서 수천 명의 시위 노동자와 100명의 무장 경찰들이 대치하다가 경찰의 발포로 2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음 날 분노한 시민들은 숨진 노동자의 시신을 메고 대구 경찰서를 점거해 무기를 탈취했고, 대구역 앞에서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시위대는 부잣집 혹은 친일파의 집을 털어 식량과 생필품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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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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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조선건국은 정당했을까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보는 입장에서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고려왕과 충신의 입장에서는 역적이고, 새로운 나라.정치를 원하는 원하는 조선의 개국공신과 이성계 측근은 대단히 정당하다고 생각했지요!^^결과적으로 조선은 500년을 이어오면서 분명 발전하고 나아졌다고 봅니다. 고려가 이어졌다면 어땠을지ㅡㅡㅡ 그건 일어난 일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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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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