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불놀이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논밭두렁에 불을 놓는 정월의 민속놀이입니다. 농촌에서 정월 첫 쥐날에 쥐를 쫓는 뜻으로 논밭둑에 불을 놓는 놀이를 말합니다. 동국세시기에 충청도 풍속에는 떼를 지어 휏불을 사르는데 이를 훈서화 즉 쥐불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쥐불은 충청도 뿐만아니라 전국적 놀이입니다. 이날은 마을마다 청소년들이 자기네 마을부근에 있는 밭두렁이나 논두렁에다 짚을 놓고 해가 지면 일제히 불을 놓아 잡초를 태웁니다. 이날 들판에 쥐불을 놓는 이유는 쥐에 의한 피해가 심하므로 쥐를 박멸하기 위함과 논밭의 해충을 제거하고 또 새싹을 왕성하게 함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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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극에서 보면 백성들을 민초라고 부르던데 민초의 정확한 뜻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민초는 백성을 잡초에 비유한 말입니다. 여기저기 그 수가 많고 하찮게 여겨지지만 밟혀도 죽지 않고 일어나는 잡초와 같은 민중들의 특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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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에게 영감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검사들을 영감님으로 부르는 이유는 그들의 업무적 특성과 역할 때문입니다. 검사는 법원에서 사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으로서 국민의 공공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죄를 수사하고 공판을 진행하며 사회에 대한 법적결정을 내리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이러한 업무적 역할에서 검사는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공정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업무적 역할과 책임은 엄청난 동기부여와 영감이 필요합니다. 이에 따라 검사를 영강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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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세금을 어떻게 걷어들였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의 세금제도에는 우선 조세인 전세가 있습니다. 전세는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토지에서 수확되는 일부분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제도입니다.그리고 공납 즉 공물이 있습니다. 공물은 그 지역의 특산물을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입니다. 또 국역으로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신역은 신분에 따라 특정한 사람에게 부과하는 것이며 요역은 신분에 상관없이 개별 민호의 불특정 사람을 대상으로 부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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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어떻게 조선시대에 입지를 늘린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말에 안향과 백이정에 의해 들여온 성리학의 보급으로 여말선초에 신진사대부 계층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목은 이색을 중심으로 절의파인 포은 정몽주 등과 역성혁명파인 삼봉 정도전 등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절의파의 정몽주는 이방원에 의해 제거되어 조선은 역성혁명파들의 주도하에 건국되었으며 그들의 건국이념이자 교육목표는 성리학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고려의 기득권 세력들이 불교를 신봉하였기 때문에 이를 혁파하고자 성리학을 주이념으로 삼은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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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찍는 도장을 도서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글씨나 그림을 완성한 뒤 작품에 자신의 아호나 이름 그린 날짜와 장소 등을 쓰고 도장을 찍는 일 또는 그 도장이나 도장이 찍힌 것을 낙관이라고 합니다. 도서는 조선시대 왜인의 통제를 위해 일본의 호족이나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으로 예조에서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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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삼정승위에 만동묘지기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정도로 권세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님 위에 감사 감사 위에 참판 참판 위에 판서 판서 위에 삼상(삼정승) 삼상 위에 승지 승지 위에 임금 임금 위에 만동묘지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동묘는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화양계곡 내에 위치한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만력제)과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숭정제)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입니다. 만동묘는 사적 제417호 만동묘정비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만동묘의 이름의 유래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조종암에 새긴 선조의 어필 만절필동 선조가 쓴 만절필동을 모본하여 화양리 바위에 새겼는데 그 첫글자와 마지막 글자에서 취해 만동묘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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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대 당, 수나라 전쟁에서 보면 백만대군 이렇게 전해지는대 실제 인원은 얼마였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와 수의 전쟁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 네 차례 전쟁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동원된 것은 2차 수양제의 침공 때로 113만명과 보급부대까지 합치면 200만명이상으로 추정합니다.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은 40-50만명이 침공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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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황제국이 아닌데도 태조, 세종, 정조 등과 같은 묘호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시대 국왕의 호칭은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그중 대표적인 호칭이 묘호입니다. 묘호는 종묘에서 부르는 호칭이란 의미입니다. 묘호는 왕이 죽고나서 종묘에 신주를 모실 때 붙이는 이름으로 왕이 살아있을 때는 정해지지 않고 죽고 난 후 후대 다음 왕에 의해 그 업적이나 공을 평가하여 한 글자로 딱 표현해 정하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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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나 근동이라는 용어가 쓰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극동 근동 중동이라는 표현은 유럽을 중심에 두고 불렀던 명칭입니다. 근동 1299-1922까지 오스만제국의 최대 영토를 유럽에서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까지 영토확장을 한 1683년에 근동이라고 불렀습니다. 극동이라는 말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총칭하여 부르던 말로 영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시각에서 세계를 나눌 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중동이라는 말 또한 영국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공식적으로는 1850년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근동과 극동의 중간지역을 부르기 위해 사용된 말입니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서남아시아 등지를 부르는데 G8에서 정의한 지역과 때에 따라 중동 권역에 포함되는 지역에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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