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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지페의 주인공 신사임당은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사임당은 한국사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위인은 맞습니다. 하지만 다른 위인들, 한국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과는 다른 형태의 위인 입니다. 그녀가 한국사의 몇안되는 여성위인인 이유는 바로 현모양처 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인 율곡이이를 대단하게 키워냈으며 여성의 사회진출이 어려운 시기에 그림, 서예, 시 등에도 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성으로써 내조를 잘했기에 위인에 등극할순 있으나 그에 국가의 얼굴인 지폐의 도안까지 올라왔다는 것에 있어서 개인적으론 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본받을 만한 여성상이 바료 사회적으로 이름을 드높힌 것이 아니라 내조를 잘하고 살림을 잘해야 한다는 의도가 있지 않나 라는 지점 때문입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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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사업금을 모으기 위해 하는 바자회에서 바자의 뜻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바자르', '바자'는 흔히 한국에서 '바자회' 할 때 그 바자의 어원으로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동남부 유럽과 인도 등 남아시아 일대, 서아프리카, 말레이시아 일대에서 열리던 정기 전통시장을 말합니다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말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단지 순우리말이나 한자어일 것이라 오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뒤에 한자임이 명확한 '~회(會)'를 붙여서 쓰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느낌이 납니다. 따라서 '바자회'를 직역하면 '시장회', '장터회' 즈음 될 것이나, 실제로는 중동의 '바자르'와 한국의 '바자회'는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바자-회(bazar會) 「명사」공공 또는 사회사업의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벌이는 시장. =바자.【불우 이웃 돕기 바자회.】【폐품이 수집되고 기부금이 모금되고, 곳곳에서 부인들 주동의 각종 바자회가 요란하게 개최되었다.≪홍성원, 육이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한국에서 바자회는 주로 '특정 목적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단체 내부에서 작은 규모로 만드는 일시적인 장터'를 말합니다. 특히 공공단체, 자선단체나 환경단체, 동물단체, 종교단체 등 비영리조직에서 주로 실시하며, 내용도 '이웃 돕기 바자회', '유기 동물 기금 바자회'와 같은 사회적인 것이 대다수입니다. 이 밖에 아나바다 운동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관련 바자회가 자주 열리기도 했습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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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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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조의금 문화는 어떻게 처음 유래된 건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부조금은 우리 고유의 풍속인 상부상조에서 유래했습니다. 지연이나 혈연 등을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품앗이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예전엔 혼례나 장례 등 큰일을 치를 때 곡식ㆍ술 등 물품이나 노동력으로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탰습니다한데 현대에 들어 현금이 보편화되면서 그 본질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형편에 따라 현물이나 자신의 몸으로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돈을 봉투에 넣어 건네거나 계좌이체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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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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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중 괴벨스는 어떤 인물이였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파울 요제프 괴벨스(독일어: Paul Joseph Goebbels, 문화어: 파울 요제프 겝벨스, 1897년 10월 29일 ~ 1945년 5월 1일)나치 독일의 정치인으로, 베를린 관구장 및 중앙선전국장과 국민계몽선전부 장관을 역임하였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가까운 심복 중 한 명으로, 언어 엘리트의 장점을 살려 주도면밀한 대중연설 능력을 통해 독일 국민들에게 극단적인 반유대주의를 설파하며 홀로코스트 등 나치의 여러 악행에 앞장선 인물입니다.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가 사용한 선전 · 선동 방식은 전후 세계의 정치와 언론에 큰 영향을 주었기에 선전 · 선동의 제왕으로 칭해지기도 합니다.독일의 전성기때는 히틀러의 오른팔로써 권세를 누렸으나 전쟁이 끝나가면서 나치 독일의 패배가 가까워지자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에 자살했고, 히틀러의 유언에 따라 괴벨스가 그를 계승하여 독일 총리가 되었으나, 괴벨스는 이 직책에서 단 하루만을 근무했습니다. 다음 날 5월 1일, 괴벨스와 그의 아내는 그들의 아이들을 사이안화 칼륨을 통해 독살한 후 자살했습니다. 독재자의 말년은 아름답게 끝나기가 어렵죠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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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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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괜찮지만, 갑자기 추운 곳을 가게 되면 몸에 닭살과 함께 털이 삐쭉서는 현상을 느낄 수 있는데요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추위를 느끼면 털이 바짝 서고 피부가 닭살처럼 우툴두툴하게 변합니다. 추위에 느끼면 뇌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신체 각 기관에 '긴급상황'이라는 명령을 보내 방어할 태세를 갖추게 되는데 하나가 바로 피부가 닭살처럼 변하는 소름입니다. 뇌의 긴급명령에 따라 모낭 옆에 나뭇가지처럼 붙어 있는 '털세움근'이라는 근육이 수축하는데, 이 근육의 작용으로 털은 '일동 차렷' 모양으로 세워지고, 털 주변의 피부는 위로 당겨 올라가면서 닭살처럼 변하게 됩니다. 털은 체온을 보호하는데 추울 때 누워있던 털이 똑바로 서면 털과 털 사이를 통과하는 공기가 많아져 체온을 덜 뺏기기 때문입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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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생명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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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노량에서 죽지 않았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일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공식적으로 문서화된 사료에는 1598년 12월 16일 노량해협, 노량해전에서 사망하십니다. 해당 내용은 징비록에 기록된 사항입니다.이순신이 명나라 제독 진린과 같이 바다 어귀를 지키다가 쳐들어가자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은 사천에 머물고 있던 도진의흥(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때 이순신이 도진의흥을 공격, 적선 200여척을 불태우고 수많은 왜군을 죽였으며, 그대로 도망치는 왜군들을 노량까지 뒤 쫒았다.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에서도 이순신은 직접 나서 싸우다가 날아오는 총탄에 맞고 말았다.총탄은 가슴을 관통하고등 뒤로 빠져나갔다. 주위 장수들과 병졸들이 그를 부축해 방패로 가려놓자 이순신은 지금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유명한 사건일수록 야사는 많이 생산되는 법입니다. 정확한 사료가 없는 설은 재미로 받아들이는게 어떨까 싶습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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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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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언제부터 일본으로 불리게 됐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이란 국호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670년 문무조에 나옵니다. 즉, “왜국(倭國)이 국호를 바꿔 일본이라 하였다. 이는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그와 같이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또한 중국의 ‘구당서’ ‘동이전(東夷傳)’는 서기 670년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바꾼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일본국은 왜의 다른 명칭이다. 이는 그 나라가 해 뜨는 곳에 있어서 만들어진 이름이요. 혹은 말하기를 왜국이라 함이 아름답지 못한 이름으로 스스로 싫어하였다. 그런 이유로 일본이란 이름으로 고쳤다" 라고 합니다.최초 왜국(倭國) 이란 국호였으나 이름의 뜻이 키가 작다, 추하다, 왜소하다 란 의미가 있어 변경을 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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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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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드미사일은 이름이 왜 스커드 일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스커드(Scud)는 소련이 개발하여 많은 국가에 판매한 미사일 시리즈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나토 보고서 이름인 SS-1 Scud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러시아 이름은 R-11(초기 개발분), R-17 엘브루스, R-300(후기 개발분)입니다. 스커드라는 이름은 언론에 의하여 본래의 미사일에 기반하여 여러 나라에서 개발된 다른 변종에도 사용되었고때로 미국에서는 서방에서 개발되지 않은 모든 탄도탄을 일컫기도 합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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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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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잎 위에서는 왜 물이 구슬처럼 굴러 다니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연꽃잎을 자세히 보면 보면 연꽃잎은 다른 잎들보다 훨씬 매끄럽게 보입니다. 현미경으로 나노 크기를 볼 수 있을 만큼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데 사실 연꽃잎 표면은 3~10㎛ 크기의 수많은 혹(bump, 융기)들로 덮여 있고, 이 혹들은 나노크기의 발수성 코팅제로 코팅되어 있습니다이러한 울퉁불퉁한 독특한 구조 덕택에 연잎 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잎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내리게 됩니다. 즉 연꽃잎 위의 물방울은 돌기 위에 떠 있기 때문에 표면에 접촉하는 면적이 크게 줄어들어 표면장력이 떨어집니다. 실제로 연꽃잎과 물방울의 접촉 면적은 덮고 있는 표면의 2-3%밖에 되지 않고 마치 물방울이 공기 위에 떠있는 모양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 물방울이 위치해 있다다 보니 물방울이 모이고 합쳐져서 무거워질 때 땅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게 됩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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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천문우주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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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역사적으로도 성적으로 개방적인 이유가 뭘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대 일본의 성문화는 유럽처럼 대놓고 개방적이라기보다는 양지에서는 보수적이나 음지에서는 퇴폐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주변에 비교할 만한 선진국이 일본 정도라 한국에 비해 개방적인 일본이 성진국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유럽과 비교했을 때 일본의 성문화는 개방적인 축에도 끼기 어렵습니다. 현대 일본은 유럽 전역에 흔한 누드비치도 거의 없으며, 북유럽 등에서는 흔한 나체 혼욕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하지만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인건 사실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많이 치르다보니 성비가 맞지 않아서 라고 생각됩니다. 도요토미가 통일을 할 당시에는 워낙 많은 백성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농사를 짓거나 전쟁을 할 백성수가 부족할 정도 였습니다. 그래서 도요토미 이후 일본을 통일한 도쿠까와는 일본 여성들에게 남성들을 쉽게 받아드리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합니다또 일본의 요바이라는 풍습은 마을의 남성이 밤에 여성에게 찾아가 하룻밤을 청하여 마을의 많은 여성과 밤을 보내는 등 성생활에 대해서는 아주 개방적인 경향이 많았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인한 인구감소에 따른 정책적인 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런 전통적 관습과 사회적 문제로 인해 일본의 성문화는 개방적일 수 밖에 없었는데 현대에 와서도 태평양 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남성들이 희생되고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대까지 일본의 성문화는 계속 개방적인 상태라고 생각됩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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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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