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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퐁듀라는 것은 처음 먹어 봤는데, 나름 괜찮던데 이 역사는 어떻게 시작이 된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퐁듀의 시작은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춥고여름날에도 만년설이 존재하는 알프스에 살던스위스인들이 고안해서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창고에 둔 치즈와 빵이 추운 지방이라 딱딱해졌기에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먹으려고 와인에다가 치즈를 녹여서 빵에 찍어먹었다고 합니다.또한 퐁듀는 알프스 산간 지역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발달한 요리로 스위스가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의 생활상도 반영된 음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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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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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로 내려온 발해계 주민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발해가 거란에게 망하고 다수의 발해인들은 고려로 흡수됩니다. 고려는 망해버린 발해인을 다수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고려초의 정치적 국가적 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발해인뿐만 아니라 여진인 거란인들도 많이 흡수하는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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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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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그림이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김홍도의 그림은 주로 서민 생활과 세속에서 소재를 포착하여 정감 넘치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홍도의 회화 소재를 살펴보면 시정의 유흥가, 나루터, 길 떠나는 나그네의 행장, 땔나무를 팔고 오이를 파는 장터, 승려와 비구니, 봇짐을 지고 구걸하는 걸인, 씨름하는 모습, 논갈이와 벼 타작, 담배 썰기 등 대부분 서민들의 일상생활이나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을 형형색색으로 다양하게 다루어 오묘함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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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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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수탈해 간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몇 즴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의 일본 현지 조사 결과, 현재까지 일본내 박물관등에서 확인된 한국 문화재는 약 3만4000여점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가 20개국에 걸쳐 7만4000여 점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민간 전문가가 들은 수장고에 방치된 문화재가 20여 만점, 개인소장문화재등을 고려하면 약 1백만 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있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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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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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가장 유명한 어록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런말을 하게 된 사건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의 배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정권이 막바지로 치닫던 1979년 9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미국의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서만 박정희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국내 문제를 외국 언론에 고자질 했다”며 격노했으며 당시 여당인 공화당은 단독으로 김영삼에 대한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로 암울한 시기 국민들의 희망과 등불이 되는 명언(名言)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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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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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언제 단일민족사상이 뿌리잡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민족이란 오래된 개념이 아닙니다. 민족이라는 것은 근대에 와서 생긴 개념으로 지금으로부터 1500년전의 역사를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다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입니다따라서 단일민족 사상은 일제시대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단일민족 이미지를 만들어 이용한 것입니다.굳이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는 것은동일 언어와 글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을 들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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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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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를 흉노의 후손으로 언급하는 내용은 어디서 나온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신라는 흉노족의 후손이라는 증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신라의 문화는 고려와 백제와는 다른점이 많구요 흉노족과의 문화와 많이 흡사할 뿐만아니라흉노족의 풍습까지도 신라와 많이 흡사하다고 합니다. 또한 언어까지도 고려와 백제와는 많이 달랐다고 하더군여.그리고 신라 역사에서 아시다 싶이 혁거세와 알지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알(박혁거세)과 하늘에서 내려온 금함(김알지)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다른곳에서 온.. 즉 이주민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라는 중국에서 이주해온 흉노족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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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8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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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부터 한반도에 정착한 예맥인이 무슨 민족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예맥(濊貊)인은 원래는 요서 지역에 있었으나 근방의 한족, 유목민족 세력에 밀려 점점 동진하여 한반도 남부에 살던 한(韓)족과 융합되어 현대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 되었습니다.'예맥(濊貊)족' 자체가 원래부터 하나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설과, '예(濊)족'과 '맥(貊)족' 두 민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고구려(7세기)와 발해(10세기)가 멸망한 뒤 예맥족은 돌궐·중원·거란·여진 등으로 일부 동화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한반도 세력이 되어 지금의 한민족 계보로 이어졌습니다.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우세를 차지한 예맥족이 원삼국시대~삼국시대부터 자칭·타칭 삼한이라 불린 것으로 보아 크게 보면 서로의 정체성이 하나의 세력권으로 점차 동화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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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8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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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초기 삼한진한변한이라고 왜 불렀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삼국이 있었던 지역에는 본래 목지국의 군장의 세력하에 진국이라는 부락연맹체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또한 진국의 동북 지역에는 일찍부터 북쪽 나라에서 남하 이주한 사람들로 형성된 집단사회가 있었는데 낙랑의 한인들은 이를 진한이라 불렀습니다. 그 뒤 한의 칭호는 점점 확대되어 진왕을 맹주로 받드는 모든 소국에 대해서도 한의 칭호를 붙이게 되었고 이리하여 후한 말 대방군이 새로 설치될 무렵에는 진한과 아울러 마한 ·변한이라는 명칭이 나타나게 됩니다. 마한의 마(馬)는 본래 부족이름인 개마(蓋馬)에서 온 것이라 하며, 변한의 변(弁)은 그들이 사용한 관모(冠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위지》 및 《후한서》 등은 진한은 동쪽에 있고 마한은 서쪽에 있다고 그 위치를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한은 충청남북도와 전라남북도, 진한은 지금의 경상북도, 변한은 낙동강 유역에서 전라남도의 동부에 이르는 지방으로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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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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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가 원나라로 가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당시 고려는 원간섭기에 사사건건 원나라 눈치를 봐야 했고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원나라는 고려를 복종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오랫동안 꾸준히 공녀를 고려에 요구했고, 기황후는 공녀로 선발되어 원나라에 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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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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