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출신이 어떻게 되나요?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은 '가문을 알 수 없음'이록 명시되어 있어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귀족으로 보는 주장으로 '을씨 귀족'의 대표적 인물로 을파소, 을두지 등을 통해 추정합니다. 또는 '목천 돈씨' 시조설로 돈씨 가보에서 을지문덕 후손이 돈씨로 변경하였다는 주장입니다. 혹은 선비족의 귀화하여 '을지'씨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하지만 을지문덕의 출생, 생애, 그리고 후손에 대하여 기록의 부재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조선이 생각하는 국경선에 관한 질문입니다!
조선왕조의 국경선은 세종 때 4군 6진 개척으로 여진족을 몰아냈습니다. 하지만 청의 건국 이후 국경선이 모호하여 숙종 때(1712년) 당시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국경선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정계비의 내용에 따르면, '서위압록, 동위토문'으로 명기하였습니다. 문제는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것은 명확한데, 1885년 이후 토문강의 위치를 놓고 조선과 청의 국경 분쟁이 있었으며, 이후 간도 귀속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909년 일본과 청의 '간도협약'에 의해 두만강 이북 지역의 간도가 청의 영토로 간주되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왕과사는남자 어디까지가 실화인가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영월 청령포 유배 생활을 다룬 실화 기반 영화입니다. <실록>에 따르면, 호장 엄홍도는 단종 악몽 시 밤마다 달려와 위로 하였다고, 단종의 장례를 직접 치렀습니다. 한명회와 관련된 내용도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단종의 자결 장면 등은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이 반영된 창작입니다. 실록에는 목을 매었고, 야사 연려실기술은 하인의 활줄 도움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실록과 달리 하인의 도움을 받아 활줄로 자결한 것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동북아시아별 제사를 기리는방식 차이가 궁금해여?
동아시아 지역의 여러나라들은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지냅니다. 하지만 각국의 제사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조상의 기일 제사와 설과 추석 명절에 차례를 지냅니다. 상차림은 고기, 밥, 국, 과일 등을 올립니다. 그리고 중국은 춘절 등 명절 위주로 조상에 제사를 지냅니다. 돼지고기, 오리, 생선, 과일, 술 등을 간소하게 상차림으로 합니다. 일본은 불교식과 신토가 결합된 형태로 주로 8월 오봉과 정월에 제사를 지냅니다. 사당과 집에 가족 불단이 있습니다. 쌀, 모치, 생선, 야체, 술 등을 상차림으로 올립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대한광복군이 창설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대한광복군은 혹시 한국광복군을 말하는 것인가 궁금합니다. 유사한 조직으로 여러 단체가 존재했는데, 1915년에 박상진의 주도로 조직한 대구에서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1914년 연해주에서 이상설, 이동휘가 주도한 대한광복군정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광복단은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 선생이 주도하여 조직한 광복단으로 후에 조선국권회복단과 통합되어 대한광복회로 발전합니다. 만약, 한국광복군을 의미한다면, 1940년 9월 충칭에서 창설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속 독립군 부대를 말합니다. 한국광복군은 1941년 대일대독 선전포고, 1943년 인도미얀마 작전 참전, 1945년 미국과 협조하여 OSS특수훈련과 국내 정진군 조직 등의 활약을 하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세종 시기 신백정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백정은 본래 고려시대 일반 평민을 의미하였습니다. 즉, 국가에 대한 직역이 없어 토지를 지급받지 못했으나 조세, 역의 의무를 다해 과거를 통해 관리로 진출할 자격을 갖춘 일반 백성을 말합니다.그런데, 조선이 개국하고 세종은 천민 신분에 해당하는 재인, 화척을 일반 백성에 해당하는 백정으로 명칭을 통합하였습니다. 즉, 고려시대 천민 계급을 양민으로 신분 상승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백정;은 여전히 종사하는 직업으로 인해 천시당했으며, 일반 백성들도 백정으로 불리는 것을 꺼렸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백정은 고려의 백정과는 다르게 차별된 신분으로 고정됩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대규모로 철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흥선대원군은 1863년 고종의 즉위와 함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통치 체제의 붕괴되고, 민생이 도탄에 빠졌습니다. 따라서 흥선대원군은 집권후 통치체제를 재정비하고,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 개선에 주력했니다. 특히 서원을 철폐하여 민생 안정과 재정을 확충했습니다. 서원은 선현을 제사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그리고 붕당의 근거지였습니다. 하지만 서원은 지역민을 수탈하고, 붕당 정치의 모순의 소굴이었습니다. 비록 양반들의 반발이 컸지만 서원 철폐를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재정을 확충하였으며, 붕당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한국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서 혹시나 조금 더 우월한 뭔가가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나라 여성들의 여성상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 유교적 질서 속에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차별받았으며, 제한받았습니다. 그리고 개화기, 일제강점기, 산업화를 거치면서도 전통적 질서는 유지되어 왔습니다. 전쟁, 가난 속에서 억척스러운 생존으로 가족의 생계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은 생존을 위한 억척스러움과 '한'은 가정과 사회 교육으로 계승되었으며, 이는 강한 한국 여성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5.0 (1)
응원하기
과거엔 왜오랫동안 동서양엣 금이 아닌 은화가 주 화폐로 쓰였나요
은화가 동서양의 역사에서 금보다 오랫동안 화폐로 사용한 것은 우선 희소성 문제입니다. 금도 매우 가치 있는 금속이기 때문화 화폐가치로 활용되었지만 은보다는 희소하였기 때문에 유통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금보다는 은이 일상에서 결제에 편리합니다. 즉, 금은 보관이나 저축에는 유리했지만 소액 거래에는 은이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5.0 (1)
응원하기
중국 진나라나 수나라와 일본제국의 공통점
인류와 국가 발전 과정에서 분열과 통합의 역사를 반복합니다. 일부 통일 국가는 내부 과잉 팽창으로 단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나라는 전국시대를 통일했지만 강압적인 법가 통치와 무리한 대토목 공사로 15년 만에 멸망합니다. 수나라 역시 무리한 대외 정복 활동과 대운하 건설 등 무리한 토목공사에 대한 반발로 단명합니다. 19세기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들이 제국으로 발전하여 식민지를 넓힌 국가들도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나라들은 무리한 영토 침략과 피정복 지역에 대한 강압적 통치, 그리고 그에 따른 반발로 인한 부작용이 공통점입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