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왕이 되지못한 사람들의 직계후손은 어디서 살았나요
조선시대 왕이 되지 못한 대군과 군과 같은 왕자는 초기에는 궁궐 밖의 별궁이나 왕가에서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안평대군은 자수궁, 고종의 서자 의친왕은 사동궁에 거처했습니다. 그리고 녹봉 등 경제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하지만 왕자의 후손들은 세대가 지날수록 자손이 번성하게 되면서 군호 계승은 장남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증손자 이후 부터는 녹봉 등 경제적 지원도 축소되어 양반 사회에 흡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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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양대군은 자신의 조카를 왕위에서 몰아내면서까지 왕 자리를 탐냈나요?
우선 수양대군은 권력욕이 있었습니다. 그는 야심차고 군사, 정치 재능이 뛰어났지만 왕위 계승권이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 단종을 보좌하고 있었던 김종서, 황보인 등 원상들이 종친을 배제하고 의정부 강화로 수양을 위협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 왕을 돕는 다는 이유로 왕권의 약화를 우려했습니다. 즉, 수양대군은 권력 야삼과 왕권 강화 명분으로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몰아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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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의 문제점은 무엇이 있나요?
유신헌법은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정권 연장을 위해 유신을 선포하여 제정한 헌법입니다. 우선 국회를 해산하고 국회 의결 없이 비상국무회의에서 제정하여 국민투표로 확정하였습니다. 그 내용도 문제점이 많습니다. 우선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구성하고, 이곳에서 간선제로 대통령을 선발하도록 했습니다. 박정희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단독 후보로 출마하여 100%의 지지를 받아 8,9대 대통령으로 연속 당선되었습니다. 또한 연임제한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1/3를 임명하고, 국회를 해산할 권리를 통해 입법권을 장악하고, 법과과 대법원장을 임명하여 사법권도 장악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대통령은 긴급조치권을 통해 헌법에 규정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신헌법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데 바탕이 된 독재 헌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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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 매장할 때 우리나라의 풍습은 머리쪽을 북쪽으로 향하게 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장례 풍습에서 고인을 매장할 때 머리를 북쪽으로 행하게 하는 것은 풍수지리설의 음양오행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묘지를 남쪽으로 향하게 하니 자연스럽게 머리는 북쪽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음양오행 원리상 북쪽은 음의 기운, 즉 죽은 자는 음의 세계에 가기 적합하도록 한 것으로 안식하는 안정적인 위치로 여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상 신위도 북향으로 높여 조상을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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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지평선은 무엇이고 왜 이름을 그렇게붙엿는지 궁금해여?
사건의 지평선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블랙홀 주변의 경계면입니다.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외부로 전달되는 수 없는 관측 불가능한 구역을 말합니다. 사건은 시공간 특정 지점의 물리적 상태 변화, 지평선은 지구에서 수평선처럼 한계 경계를 비유한 용어입니다. 내부가 '지평 너머'처럼 가려진 직관입니다. 이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유래되었으며, 우주 팽창에도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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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했나요?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박정희 정권이 1972년 10월 유신으로 제정한 유신헌법에 따라 신설된 헌법 최고기관입니다. 이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국민 총의 수임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통령에 지명한 후보를 선출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국회의원의 1/3을 유신정의회라하여 추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외에도 헌법 개정 최종 의결과 통일 정책을 심의하는 기관입니다.하지만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유신 정권의 핵심 기관으로 독재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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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이름은 왜 어떤 곳은 ‘국’이 붙고, 어떤 곳은 한자음이나 영어식으로 부르나요?
한글의 외국 국호 표기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에 근거하여 원어 음운을 한글로 음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친숙도가 높은 나라는 주로 '국'을 붙여 표기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영국, 태국 처럼 자체 한자국명을 한국식으로 읽어 표기합니다. 과거 러시아는 노국, 독일은 덕국, 프랑스를 법국으로 부른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부터 관용화된 형태로 이미 굳어진 나라를 제외하고 원음으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과거서부터 한자권 나라의 공식 국명을 사용했던 일본, 대만 등은 공식 한자 국명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이 것이 공통 한자 문화로 자연스러운 음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어식 또는 현지어 국가는 현지어 발음을 그래도 표기합니다. 예를들어 캐나다는 그냥 원지음 따름에 따라 표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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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술자 장영실에 대해 궁금합니다.
장영실은 동래현 관노비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재 기술자라는 소문으로 세종에게 발탁되어 조선 최고의 발명가가 된 것입니다. 그는 자격루, 앙부일구, 혼천의, 측우기 등 혁신적인 도구를 발명하였습니다. 1421년 명나라 유학에서 천문 기술을 수집해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개량했습니다.그는 세종의 본격 중용으로 종 3품 대호군까지 승진하였습니다. 하지만 1433년 세종의 어가가 부서지는 사고로 붕경죄를 물어 의금부에 국문을 받고 파면 처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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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혜종, 정종의 재위기간은 왜 이렇게 짧은 건가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호족과 결혼 정책을 통해 왕조의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25명의 왕자들의 배후 세력인 유력 호족은 태조 사후 권력 경쟁에 본격화하였습니다.그런데, 태조 장화왕후의 아들 혜종은 외가인 나주 오씨는 후삼국 통일 이후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재위 중 왕규의 난과 이복 동생들과 경쟁 과정에서 급서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종은 태조의 셋째 왕자로 혜종 사후 신하들의 추대로 즉위했습니다. 하지만 서경 천도 추진 과정에서 세력 다툼이 일어나 즉위 4년만에 동생에게 양위하였습니다.결론적으로 태조 초기에는 결혼정책으로 왕조의 안정이 가능했으나 태조의 사망 이후 왕자와 연결된 호족 세력들간의 세력 다툼 과정에서 왕권이 안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광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노비안검법 등 호족 숙청에 적극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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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는 고대부터 중세까지 다른 민족의 침입을 받은 적이 없나요?
일본은 고립된 섬나라이기 때문에 고대부터 중세까지 외부의 침략을 받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 몽골의 2차례 침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태풍으로 몽골 함대가 격파되어 상륙 전투가 일어나지 않고 퇴각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은 전국시대와 에도시대에 이르기 까지 내부 분쟁은 있었지만 외부의 침입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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