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관련에대해궁금해서질문합니다.
1922년 소집된 워싱턴회에서 해군군축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미국은 함정의 톤수를 미:영:일=10:10:7을 제한했으나 일본은 평등권을 근거로 85%를 주장하여 협상에 난항이었습니다. 결국 일본 60%(5:5:3)로 타결되었습니다.미국이 일본의 비율을 85%를 거부하는 이유는 필리핀, 괌 안보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즉, 일본의 해군력 증강은 필리핀 함락과 괌 점령으로 이어지고, 이는 하와이와 본토에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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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국제를 작성한 기구는 어디인가요?
대한제국에서 1899년 대한국국제를 작성한 기구는 법규교정소입니다. 1899년 6월에 설치한 법규교정소에서 고종의 지시로 독일, 일본 헌법을 참고하여 9개 조항의 대한국국제를 제정한 것입니다. 법규교정소는 독립협회의 민권 운동을 억제하고 황제권글 강화하기 위한 법규 제정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대한국국제는 대외적으로 자주독립국가를 표방하고, 대내적으로 전제군주국을 선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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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지낼때 필수로 올려야 하는 음식이 있을까요?
제사 의례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주자가례>를 기반으로 합니다. 제사상의 필수 음식으로는 밥, 국, 고기 생선, 전, 나물, 과일, 술 8가지입니다.밥은 흰쌀밥이며, 소고기 국이나 탕국을 앞줄 중앙에 배치합니다. 그리고 육류는 수육 또는 갈비찜, 어류는 조기구이와 북어포를 씁니다. 전과 나물을 3가지를 하며, 과일은 대추, 밤, 배, 감을 필수로 합니다. 그리고 술은 막걸리나 청주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장 앞줄에 밥과 국, 고기, 중간에 전과 나물, 맨 뒤줄에 과일을 배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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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기일 날짜 계산이 헷갈리네요 알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제사는 사망일을 기점으로 음력 변환없이 양략 그대로 사용한다면, 자시(밤 11~새벽 1시)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025년 양력 7월 31일 새벽 2시에 사망하셨다면 첫기일은 2026년 7월 30일 밤 11시에서 31일 새벽 1시 사이에 지내는 것이 전통입니다.하지만 오늘날 가족들이 합의하여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 것이 트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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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떡국을 먹는 문화는 어디서 시작 된걸까요?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시작된 전통 풍습입니다. 최초의 기록은 조선 세시서 <동국세시기>, <영양세시기>에 "병탕"(떡으로 만든 탕)으로 등장하며, 고려후기 귀족 차례상 음식으로 민간에 까지 확산된 것입니다.흰색의 떡은 새해 정결, 장수를 의미하며, 엽전 모양은 재몰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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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연인의 아치는 언제부터 유명했나요?
이탈리아의 살렌토 반도의 연인의 아치는 석회암의 침식으로 형성된 자연 지형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아치 아래 키스하면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유행하면서 청혼과 관광 명소로 발전한 것입니다. 즉, 석회암 절벽이 파도와 풍화로 서서히 침식하여 중앙이 파여 형성된 해식 동굴로 연인들의 사랑 명소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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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조선시대? 고려시대?
설날의 기원은 삼국시대부터 기원합니다. 신라 488년 비처왕(소지왕) 당시 정월 초하루에 쥐와 까마귀를 말을 듣고 따라가 노인의 편지글로 암살을 면한 사건 기록이 있는데, 이후 정월 초하루 천신에 제사를 지내고 삼가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례화 하였습니다. 백제에서도 <삼국사기>에 3세기 고이왕 5년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후 설날이 기원했을 것을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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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맹장들중에 후반기인물중에는
문앙은 위나라 장수로 제갈탄 반란 지원 중 문흠이 없어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마소의 병력에 쫒깁니다. 특히 홀로 말을타고 적진을 뚫고 들어가 말마단기의 활약이 뛰어났습니다. 한번 적진에 들어가 100명 참살하고 탈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나라 정봉은 후반기 강력한 무장으로 문앙만큼 뛰어나나 단길필마의 무쌍 기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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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는 언제 처음 만들어 졌고 어떤 의미가 있나요?
윷놀이의 기원은 부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합니다. 이는 신채호 선생의 해석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부여는 5부족 연맹왕국으로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부여는 농경, 목축 사회로 윷놀이가 사출도나 가축 점술에서 발전했다는 설입니다. 윷놀이는 농사 점치기 놀이로 새해 풍년을 기원하원 하는 것입니다. 부여 이외에도 백제의 저포,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도 남아 있어 삼국시대부터 이미 윷놀이가 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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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는 왜 피의사제, 땀의사제라고 불렸나요?
조선 후기 김대건 신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임을 받고, 1845년 입국한 이후 1년 만에 박해로 처형되었습니다. 그가 순교했을 때의 나이는 26세로 천주교회에서는 이를 피의 증거자로 기렸으며, 2014년 성인으로 시성하였습니다.최양업 신부는 1849년 사제 서품 이후 12년간 9만리를 걸어 전국 129개 교우촌을 방문하며, 미사, 세례 고해 성사를 베풀었습니다. 매년 7천리 순회를 했다고 하네요. 1861년 경남 사목 후 상경 중 문경새쟁서 과로 장티푸스로 40세에 선종했습니다. 천주교회는 이를 땀의 증거자로 부르며, 현재 가경자인 사복후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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