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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를 왜 인도의 눈물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도의 눈물'은 스리랑카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스리랑카는 인도 동남쪽 섬나라로 그 모양이 눈물 방울 처럼 생겨 붙여진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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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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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에 나이떡을 먹는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춘분에 나이떡을 먹었습니다. 나이 떡은 송편과 유사한 음식인데,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나이 수대로 떡을 먹는 풍습입니다. 나이 떡을 먹는 이유는 농한기가 끝나고 농사가 시작될 무렵이라 배불리 먹고 농사일 열심히 하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은 크게 빚어서, 어른들은 작게 빚어서 나이 수만큼 먹었습니다. 특히 양반들은 마을의 머슴들을 불러 모아 일년 농사를 부탁하며 나이떡을 나눠 먹었기 때문에 ‘머슴떡’으로도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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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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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권에는 유교와 같은 사상이 발달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교는 중국에서 기원하여 동양 문화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유교는 주로 인간의 도덕성에 주목하고 인간과 사회의 도덕적 완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특히 '충'을 중요시하는 유교는 국왕 및 지배층의 이데올르기에 최적의 사상이었습니다. 또는 '효'는 가정에서 사회 질서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유교는 관리 선발의 기준이 되어 교육 과정에 반영되어 유교가 동양에서 크게 발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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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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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 산업이 망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콩은 과거 영화 산업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영화 산업은 급격하게 쇠퇴했습니다. 그 이유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으로 각종 규제가 많아져 영화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양적 생산으로 품질이 저하되었으며, 주요 감독과 배우의 헐리우드 진출, 불법 복제 등이 쇠퇴 요인이라고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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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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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을 왜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족의 명칭은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를 이르는 용어입니다. 조선족은 1958년 중국 주석령인 '호족조례'가 반포되면서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으로 정식 등록시키며 법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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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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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무관들에게는 관료전을 지급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의 관리들은 전시과를 지급받았습니다. 전시과는 관품의 정도에 따라 전지와 시지를 받는 것을 말하며, 전지는 조세를 거둘 수 있는 토지, 시지는 땔감을 채취할 수 있는 임야입니다. 전시과는 976년 경종때 제정되어, 18개 관품을 기준으로 목종 때 개정 전시과, 그리고 문종때 경정전시과로 변천되었습니다. 질문에 제기한 무관들의 관료전은 전시과의 전지를 말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무반이 같은 품계 보다 적은 결수를 배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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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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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궁금했던건데 내시들은왜 거세른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내시는 궁중에서 궁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내시는 왕의 곁에서 일을 하다보니 왕의 주변의 여인들과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와 같이 궁궐에서 거주하는 동안 후궁과 궁내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방지하기 위해 내시는 거세를 하였습니다. 즉 내시는 남성으로서 구실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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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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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얼마나 세세하게 기록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역대 국왕들의 행적을 사망이후 상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한 것이며, 국왕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연람할 수 없는 개관적인 역사 기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상세함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실록의 기본 자료는 시정기, 사초, 승정원일기 등 여러 자료를 참고해서 체계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또한 실록은 왕의 일상 및 행적의 내용을 가감없이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의 사관들은 대단히 강직했습니다. 3대 왕 태종이 1404년(태종 4년) 2월 8일 사냥 중 노루를 쏘다가 말에서 떨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사관이 모르게 하라." 땅바닥에서 일어난 임금의 첫마디였습니다. 태종은 창피하니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사관은 말에서 떨어진 사실은 물론 이런 말을 한 것까지 실록에 적었습니다. 당시 사관은 왕의 발언을 들으려고 병풍 뒤에 숨거나 초대받지 않은 연회장에 불쑥 나타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관은 객과적으로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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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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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젓갈을 담궈 먹는 문화는 언제 처음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젓갈은 우리나라 발효 음식으로 오래전 부터 우리의 음식 문화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특히 더운 지방에서 음식의 저장이 어려웠던 곳에서 발전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 이후 젓갈을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문왕 3년(683) 당시 왕후를 맞이하는 폐백 음식으로 등장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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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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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꽃을 주제로 한 시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진달래 말고 봄꽃을 주제로쓴시는 어떤시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봄꽃을 주제, 소재로 한 시로는 여러 사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안도현의 '개화', 이해인의 '매화 앞에서', 김소월의 '산유화', 복효근의 '매화가 필 무렵'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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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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