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서양에서 최근 해조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구에서 최근 김을 비롯해 해조류에 관심이 커진 이유는 해조류가 친환경적이고 다양하게 활요되는 슈퍼푸드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해조류는 탄소 흡수량이 노아 기후 변화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식품은 물론 화장품, 바이오매스, 의약품에도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는 해조류에 기반한 ‘블루 이코노미(경제 성장 등을 위한 해양 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잠재력에 주목한 투자와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학문 /
미술
24.02.18
0
0
고려거란 전쟁을 보다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최질과 김훈은 거란에 맞서 공을 세웠지만 문관직을 얻지 못하고 문신에게 불리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런 문제로 1014년 궁궐을 난입하여 문신들을 포박하여 왕을 협박하여 귀양보냅니다. 그리고 무신으로서 문신을 겸하면서 국정을 문란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현종은 화주방어사 이자림의 계교를 수용하여 김훈과 최질 등에게 잔치를 베풀고 취한 상태에서 제거하면서 이들의 반란 정국도 마무리됩니다.
학문 /
역사
24.02.18
0
0
대한제국시기에 위스키를 유사길로 불리운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외래어를 한자로 옮겨 쓰는 과정에서 가차문자(假借字)로 표기했습니다. 가차문자란 원래는 다른 뜻을 가진 한자를 소리가 비슷한 한자를 표기하는 하는 것입니다. 위스키는 영어로 'whisky’라고 쓰이는데, 이를 한자로 표현하면 '유사길(惟斯吉)’라고 쓸 수 있습니다. 위스키는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에서 수입하여 젊은 양반들의 파티 음료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4.02.18
0
0
고려나 조선시대 신하가 올리는 상소문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상소(上疏)란 신하가 왕에게 자신의 뜻을 글로 전하는 제도였습니다. 그 내용은 국가 정책에 대한 건의, 인물에 대한 평가, 왕의 정치에 대한 질타 등으로 봉장(封章)·주소(奏疏)·진소(陳疏)·장소(章疏) 등으로도 불립니다.상소는 왕의 마음에 들거나 국가 정책에 도움이 되면 보상을 받거나 개선 및 정책으로 수용됩니다. 그러나 왕의 불만을 사거나 국가 정책에 방해가 된다면 상소를 올린 사람을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학문 /
역사
24.02.18
0
0
과거 미국에서 LA폭동은 왜 발생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LA 폭동은 1992년 4월 29일 흑인 로드니 킹을 백인 경찰들이 집단 구타한 사건에 대한 재판이 무죄로 판결된 것이 시발점이 되었어요. 판결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나와 폭동을 일으켜 한인 타운이나 백인 거주지를 약탈, 방화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인이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된 이유는 한인 이민자들이 정착 초기 미국 노동 시장에서 불리함을 자영업과 근면으로 극복하면서 흑인, 히스패닉과 같은 소수민족들과 갈등을 빚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흑인들의 표적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폭동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언론이 1년전 1991년 3월 16일 흑인 빈민 지역의 LA 남부에서 발생한 이른바 '두순자 사건'을 집중 보도하면서 한흑갈등이 증폭하여 한인들의 피해를 키웠습니다.
학문 /
역사
24.02.18
0
0
연관 짓다는 띄어쓰고 관련짓다는 붙여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관 짓다'를 띄어쓰는 이유는 명사 '연관'와 '짓다' 동상로 두 단어 사이에 조사가 생략되었다고 보고 띄어 쓰는 것입니다. '관련짓다'를 붙여쓰는 이유는 '관련'은 접두사이고 '짓다'는 접미사'이라 한단어로 굳어져 쓰여진 것입니다.
학문 /
문학
24.02.18
0
0
신라에서 박씨나 석씨가 계속 임금이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는 초기 군장국가 단계에서 벗어나 연맹 왕국으로 발전하면서 박씨, 석씨, 김씨가 연맹을 대표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연맹 왕국 단계는 '이사금'이라 불리는 왕은 존재하였지만 각부의 군장의 권한을 유지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내물왕이 즉위하고 왕호를 대수장을 의미하는 마립간을 칭호로 바꾸고 김씨로 왕위를 세습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각부의 6부를 개편하여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고대 국가 체제를 형성하였습니다.
학문 /
역사
24.02.18
0
0
단군 왕검의 초상화는 누가 언제 만든 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군 초상화는 고려 왕조 또는 세종실록에까지 단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1883년 김관오라는 화가가 그렸다고 합니다. 그가 그린 단군은 천도교 수운회관에 전시되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4.02.18
0
0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제도는 언제 처음 도입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국회의원 공천제도는 제3대 국회의원 선거(1954) 당시 도입되었습니다. 당시 자유당이 181명의 공인 후보자를 선정 및 발표했는데, 이것이 공천제도를 처음 도입했다고 하네요.
학문 /
역사
24.02.18
0
0
지증왕이 즉위하게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지증왕은 소지마립간과 6촌 지간이고 사돈 사돈으로 소지마립간이 아들이 없어 64세의 나이에 왕위를 이었습니다. 지증왕은 즉위시 64세의 고령이었으며 갈문왕(葛文王)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갈문왕은 일종의 부왕(副王)으로 왕비의 아버지나 왕의 아버지로서 왕이 아니었던 인물들이 추봉(追封)되거나, 왕의 동생과 같이 가까운 친척이 맡아 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지증왕은 즉위 전부터 상당히 영향력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내물과 눌지 직계로 이어지던 왕실과는 다른 방계 왕족이었고, 왕위계승의 우선 순위에서 먼 위치에 있었습니다.따라서 그가 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이었다고 추정됩니다. 전왕인 소지마립간이 말년에 여색에 빠져 국정을 등한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왕궁 안에서 왕비와 승려가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 왕을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는 ‘사금갑(射琴匣)’ 설화가 존재하는 것을 볼 때, 일련의 정치적 분쟁 끝에 죽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원래 왕위계승권이 없었던 지증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혼인 설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모량부 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눌지 직계 왕실을 물리치고 왕위를 차지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학문 /
역사
24.02.18
0
0
1648
1649
1650
1651
1652
1653
1654
1655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