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사후세계는 어떤 모습과 장소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은 단절이 아닌 부활의 과정이라고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자를 미라로 만들고, 사후 세계로 인도되는 장례 의식을 실시했습니다.이집트의 '사자의 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죽은자는 생전 행위를 고백하고 아누비스의 인도로 사후 세계로 입장합니다. 그러면 정의의 여신 마트의 깃털로 심장의 무게를 재서 통과하면 오시리스에게 최종 심판을 통해 사후 세계에서 부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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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일본어의 발음이 비슷한 이유?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어와 일본어은 같은 계열은 아니지만 인접한 지역(언어동조대)이라 서로 영향을 주어 비슷한 발음과 문법이 비슷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어와 일본어는 한자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한자어의 발음이 유사합니다. 예시로 제시한 과거(過去), 미래(未來)는 일본어로는 과거를 'かこ', 미래를 'みらい'와 같이 한자의 영향을 받아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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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신정 왜 나누어져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는 고대(신라 비처왕 488년) 부터 설날인 구정을 쇠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지 문화 정책으로 신정을 강요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이승만, 박정희 정부에서도 이런 문화을 지속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끝까지 설날을 고수하여 명절을 지켜왔습니다. 결국 1985년 '민속의 날', 1989년 공식적으로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법정 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3일간 휴일로 하였습니다. 신정은 새해 첫날로 의미만 있는 것이고, 설날은 대명절로 차례, 가족과 만남, 성묘 등의 일정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3일간의 휴일을 지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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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서 실록등이나 사료에서 가장 많이 유행했던 전염병이나 질병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왕조실록의 전염병 기록은 1455회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은 온역 (瘟疫)으로 138회 기록되었습니다. 온역은 열이 많이 나고 두통,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전염성 질병입니다. 조선 전기에 많이 발생했습니다. 두번째로는 112회 기록된 창진으로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열이 나는 전염성 질병입니다. 온역과 함께 조선 전기에 많이 발생했습니다. 세번째로는 홍역으로 홍역 (麻疹)으로 103회로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열이 나는 전염성 질병입니다. 1624년에 크게 유행했으며, 영조와 정조대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그러나 가장 피해를 많이 준 전염병은 콜레라와 두창(천연두) 였습니다. 콜레라는 1821년부터 1822년까지 전국적으로 유행하여 수만명이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두창(천연두)도 치사율이 80~90%에 달해 희생자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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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 중에 임기가 가장 짧은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왕 중에서 임기가 가장 짧은 왕은 인종입니다. 인종은 1544년 11월 20일에 즉위하여 1545년 7월 1일에 병으로 승하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은 8개월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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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향토음식인 딩기장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딩기장은 보리의 껍질로 만든 전통 장류입니다. 보리 등겨에 물을 섞어 시루에 쪄서 작은 덩어리로 빚은 후 햇볕에 말려 빻은 가루와 보리쌀을 갈아서 물을 섞어 다시 찐 후 엿기름물, 소금, 고춧가루를 넣어 고루 섞은 후 항아리에 담아 한 달 동안 숙성시킨 것이에요. 된장이 메주를 발효시켜 만든 것과 다릅니다.경상도 사투리로 딩기장은 경북지역에선 시금장, 산청지역에선 보리개떡장이라고 해요. 쌈장이나 나물무침, 밥반찬, 밥 비벼먹기에도 사용할 수 있어요. 딩기장은 된장에 비해 나트륨 함량이 낮고 천연소화제 역할을 하고, 당뇨나 고혈압, 항암작용과 각종 성인병예방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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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대왕 정종은 왜 묘호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종이 묘호가 없었던 이유는 정통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해서입니다. 그는 1차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의 야심을 덮기 위해 1398년 임시적으로 세운 왕으로 태종에게 양위할 때까지 2년 남짓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태종은 정종을 왕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아들인 세종에게 '태종'이라는 묘호를 줄 것으로 통보했습니다. 이는 정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관습적으로 개국왕이 '태조'가 되고 다음은 '태종'이 됩니다.) 정종은 세종이 즉위한지 1년만에 63년의 나이로 사망합니다.정종은 사후 묘호가 없었는데 명나라에서 '공정'이라는 시회를 내리자 그 때부터 '공정대왕'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묘호는 숙종 때에 '태조의 업적을 계승하여 정국을 잘 다스렸으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크게 염려하였다'라는 의미로 '정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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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서 지내는 제사를 옮겨올때 절차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사를 옮기는 방법 및 절차는 가장마다 다를 수 있지만 간단하고 일반적인 절차은 제사를 옮기기 전에 기존에 제사를 모시던 곳에서 마지막으로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가 끝나면 축문을 읽고, 제사를 옮기게 되었음을 고하고, 다음 번 제사부터는 옮겨간 곳에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옮길 때는 쌀을 가득 담은 그릇을 보자기에 싼 후 가지고 갑니다. 쌀은 조상님의 혼백을 상징합니다. 쌀을 가지고 가면서 "아버님 가십시다"라고 고하고, 옮겨간 곳에 두었다가 그 이듬해 제사 때 그 쌀로 밥을 지으면 절차는 끝납니다. 또는 제사를 옮긴 후에는 새로운 곳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드릴 때는 옮겨온 쌀로 밥을 지고, 제사상에 올리고, 향을 피우고, 술을 부어 조상님을 모시고, 잔을 올리고, 절하고, 축문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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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 말이 통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의 언어는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로 구분되며, 각각의 언어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퉁구스 계통이라 유사했으로 봅니다. 즉 삼국의 언어가 공통의 조상 언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삼국의 언어가 완전히 같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는 말이 통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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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의 난 때 왕위찬탈의 명분이었던 여주불능선리는 왜 16년이 지난다음 나오게 된 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비담은 645년 상대등에 올라 귀족회의의 의장이었습니다. 그는 선덕여왕의 심장병이 악화되자 왕위 찬탈을 노린 것입니다. 비담은 명분으로 "여주불능선리(女主不能善理,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내세워 선덕여왕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확장하려 하였고, 염종과 함께 647년 1월에 월성을 공격했으나 김유신에 패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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