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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그린 그림중 현재에도 보존되어 있는게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 시대의 그림으로 알려진 작품은 천마도의 장니 천마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록상으로는 황룡사의 노송도를 그린 솔거의 활약과 정화, 홍계, 김충의라는 화가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을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습니다.다만 현존하는 그림으로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와 '역사상'이 있어 당시 회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자주색 닥종이에 먹선과 금선을 위주로 하고, 은선을 곁들인 이 그림들은 8세기 불상 양식과도 상통합니다. 고분 벽화로 영주시 순흥벽화 고분 벽화에서 당시 회화 수준을 엿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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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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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토지제도에 대해 궁금한게 있어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33년 일본의 도다이사의 쇼소인 소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755년 신라의 서원경의 4개 촌락의 민정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민정문서에 따르면 남녀, 연령별 인구와 가축, 토지, 특산물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토지로는 연수유답전, 촌주위답, 내시령답, 마전, 관모답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촌주위답은 촌주, 내시령답은 관료전으로 판단되며, 연수유답은 정전으로 여겨집니다.그리고 식읍과 녹읍은 수조권(세금을 거둘수 있는 권리로 일반적으로 생산량의 1/10)와 지역의 노동력 징발권을 함께 부여하는 토지입니다. 예를 들어 경주를 식읍, 녹읍으로 받으면 지역에 세금을 1/10을 수취하고, 주민의 노동력까지 징발할 수 있죠. 여기서 식읍은 공신, 왕족에게 주는 것이고, 녹읍은 관료에게 공무 대가로 주는 것입니다. 특히 녹읍은 왕권 강화 과저에서 신문왕때 폐지되었지만 경덕왕 때 다시 부활됩니다.관료전은 신문왕때 부터 지급되었던 토지로 노동력 징발권을 제외되고, 조세 수취권만 부여한 토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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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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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불상과 석굴암의 특징에는 어떤것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통일 신라의 조형미술은 우리나라 조형미술사의 최고라고 할 정도로 시기입니다. 특히 석굴암 본존불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불상입니다. 석굴암은 '영원한 부처님의 왕국'을 염원하는 신라인의 염원이 담겨져 있습니다.일단 석굴암 불상에 사용된 암석 재질입니다. 중국 등 다른 지역의 불상과 다르게 화강암으로 제작된 우리나라 불상은 조각하기 어려운 재질입니다. 화강암을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석공의 높은 기술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섬세한 조각 능력도 발휘하였습니다.두번째로는 석굴암의 배치와 본존불을 중심으로 원형의 배치와 입구의 사각형 배치로 천원지방의 구조를 갖추고 있어 당시 우주론이 반영되었습니다.세번째로는 완벽한 조화와 균형입니다. 본존불은 완전한 비례를 갖츠고 있어 이상적이고 안정감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왕즉불 사상에 입각하여 신라 중대 전제 왕권의 모습이 불상에 반영되어, 근엄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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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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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있는 신라시대 유적지 뭐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신라 시대 유물이 즐비합니다. 대표적으로 국보급 문화재로는 불국사에만 다보탑, 삼층석탑, 연화교 및 칠보교, 청운교와 백운교, 금동비로자나불,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설굴암 본졸불, 태종무열왕릉비,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성덕대왕신종, 분황사 모전석탑, 첨성대, 황복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 나원리 오층석탑, 청혜사지 십삼층석탑, 감은사지 석탑, 신선사 마애불상군, 천마총(장니 천마도), 장항리 서 오층석탑,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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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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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는 성골끼리 혼인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 상대(진덕여왕때까지)는 성골 귀족 출신만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골은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혈연적으로 부모 모두 성골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순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근친이 일반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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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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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로 다니는 자전거에 역사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자전거의 역사, 이륜차가 자력으로 달릴 수 있는 자전거의 기원은 1790년 프랑스의 콩트드 시브락(Conte de Sivrac)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두개의 나무 바퀴를 이용해 달리는 기계로 '셀리리페르(Celerifere)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1813년 독일의 귀족인 칸폰 드라이스(Karl Von Drais) 남작이 발명하고,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자전거 특허를 받은 '드라이지너'가 두 바퀴가 앞뒤로 나란히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발로 땅을 차면서 추진을 내는 형식입니다. 현재의 패달로 바퀴를 돌리는 형식은 1861년 파리에서 대장간을 하는 피에르 미쇼와 그의 아들 에프네스트 미쇼가 만든 '벨로시페드(Velociped)가 효시라고 합니다. 1861년 2대, 1862년 142대 판매로 확대되면서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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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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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과 교황과의 관계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세 유럽은 가톨릭이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당시 '교회를 떠나서는 태어날 수도 ,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톨릭은 사람들의 삶과 깊이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등 동방정교회의 교구의 성지 순례자들에 대해 셀주크튀르크가 박해했습니다. 이에 동로마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구원이 있었습니다.당시 크리스트교는 1054년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 가톨릭, 비잔티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동방정교회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로마 교회를 지배하는 교황은 유럽 전체에 대한 종교적 지배자로 군림하였습니다. 이에 동로마 제국의 구원 요청은 로마 교황의 입장으로는 동서교회를 다시 통합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겼습니다. 따라서 교황 우르반 2세는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유럽의 종교 및 정치 지배자들에게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을 제창합니다. 십자군을 통한 성지 수복과 동서교회 통합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죠.교황의 십자군 제창에 따라 1096년부터 1270년까지 성지 수복을 위한 원정이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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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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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한국사는 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수험생들이 한국사를 대충 공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너무 쉽게 출제된다는 것입니다. 문제 수준이 초등학생들도 풀 수 있을 정도 매우 쉽게 출제되어 공부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따라서 한국사 공부할 시간에 다른 과목에 집중하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는 수능 등급 취득의 용이합니다. 원점수 40점이상이면 1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100%로 한다면 80%만 취득하면 됩니다. 영어는 90%를 받아야 1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째로는 대학 입시에서 한국사 반영의 천대입니다. 다른 교과에서 비해 한국사는 점수로 반영되지 않고, 일정 등급 이상만을 유지하면 됩니다. 그것도 낮은 등급만으로도 가능합니다. 보통 서울 지역의 대학은 4등급(50%득점) 정도만 되어도 감점 없이 가능합니다.수능 한국사가 필수라고 하더라도, 수험생 사이에 한국사는 버려도 되는 과목입니다. 극단적으로 수능에서는 수학만 잘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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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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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5일이 왜 독도의 날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독도의 영유권 관련 '칙령 제41호'가가선포한 1900년 10월 25일과 연관됩니다. 칙령 41호는 다음과 같습니다."울릉도를 울도(欝島)로 개칭하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정하는 건제1조 울릉도를 울도라고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여 관제 중에 편입하고 군(郡) 등급은 5등으로 할 것제2조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台霞洞)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석도(石島)를 관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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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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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관은 무슨일을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역관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통역과 번역의 업무를 담당했던 관리를 말합니다. 조선 시대의 역관의 사역원에 소속되었으며, 신분적으로 중인에 해당합니다. 청나라의 연행사나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될 때 수행원으로 동행합니다. 또한 경비를 보충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무역에 종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홍삼과 중국의 약재 등 문물을 사고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역관을 중인이지만 부를 축적한 인물도 있습니다.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등장하는 변부자도 역관 출신입니다. 그들은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통청 운동을 통해 신분 상승을 도모하가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외국 문물에 일찍 눈을 떠 개화의 선구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경석 인물은 통상개화론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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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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