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과거에 3일장 5일장으로 장례식을 치뤘던 배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3일장을 하는 이유는 옛날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사망하였어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 또는 바람이 담겨진 장례 절차입니다. <예기>에 따르면 '죽은 지 3일이 지나 염하는 것은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흘째에도 사흘째 사흘째 살아나지 않으면 역사 살아나지 않으므로 사흘이 지나 염하는 것을 예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가례>에는 '상구(喪具)를 마련하지 못하면 3일이 지나도 근심할 것이 없다.'고 하여 그 기간을 강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3, 5일장을 하는 이유는 홀수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소 3일은 친족들에게 망자의 사망 사실을 알리고 이들이 조문을 위해 찾아 오는 일정을 고려한 일자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요한 아담 샬 폰 벨을 가까이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심양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고 두 사람은 순수한 우정을 나눴습니다. 소현세자와 아댬샬은 서로의 필요성에 따라 교분을 심화시킨 사례입니다.소현세자는 천문학 등 서양 학문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왕성했으며, 조선의 발전에 서양 학문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또한 아댬샬은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 개교(改敎)를 전교 계획을 세웠는데, 최우선 후보국이 조선이었습니다. 소현 세자가 조선의 차기 왕이라는 사실엥 조선 개교에 희망을 가지고 소현 세자와 친분을 쌓았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발달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4세기 르네상스가 이탈리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는 먼저 이탈리아는 옛 로마 제국의 중심지로 고전 문화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따라서 문화 유산을 통해 인문주의를 접하기 수월하였습니다. 두번째로는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자 많은 학자가 피신해 오면서 고전 문화 연구가 활발하였습니다. 세번째로는 십자군 전쟁 이래 번영을 누리던 북부 도시의 부유한 상인과 군주는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문예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르네상스가 가장 빠르게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공민왕과 신돈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상도 영산현 출신 승려였던 신돈은 당시 생불(生佛)이라는 소문을 들은 공민왕이 영산현까지 직접 내려가 신돈과 개경 현화사로로 모시고 왔습니다. 신돈은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왕사로 궁궐을 출입하였으며, 공민왕은 개혁정책을 추진하려고 신돈을 기용했습니다. 공민왕은 신돈이 여타 신하와 달리 파당에 속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리사욕이 없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여 신돈을 전면에 내세우고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합니다.그러나 왕비 노국대장공주가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공민왕은 절망감에 모든 권한을 신돈에게 맡기면서 그의 권력은 더욱 높아집니다. 신돈은 환속을 하고 성균관 개편과 이색 등 인재 등용, 전민변정도감을 통해 적극적인 개혁을 단행합니다.그러나, 권문세족의 반발과 신돈의 축첩 등 기행으로 반발이 거세지다가 공민왕이 개혁에 대한 염증으로 제거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알려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양만춘에 대해서는 출생, 이력에 대해 당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 현존하는 기록 가운데 양만춘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록은 <당서지전통속연의>에서 입니다. 소설의 후반부 '태종동정기'(太宗東征記)라는 부분에 나오는 창작 인물입니다. 또한 조선 후기 윤근수, 송준길, 박지원 등의 많은 문인들이 <당서지전통속연의>를 참고하면서 양만춘이란 가공의 이름이 널리 인용되면서 양만춘이 안시성 성주로로 이름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사랑니는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랑니의 어원은 첫번째로 '살 안에서 나는'(살안니)가 변형되어 될 설, 두번째로는 '살난이'(늦게 난 이)라는 뜻, 세번째로는 '사랑을 알 때쯤 나는 이'의 의미가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네요. 따라서 정확하게 확정된 어원은 없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엘리자베스1세는 어느정도로 충치에 시달렸길래 여러 일화가 있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설탕이 귀했던 시대에 설탕의 귀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1세는 단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충치가 많고 치통에 시달렸습니다. 또한 입냄새가 심했습니다. 당시 충치는 만병의 근원이라 생각하여 발치를 해야했는데, 마취가 없어 고통스러운 일이어었습니다. 1578년 엘리자베스 1세도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치통에 시달리다 발치를 했는데, 그 것도 시범을 본 다음에에 발치를 9개월만 허락했다고 합니다.그러나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모든 이빨을 발치하고 죽만 먹고 산다는 소식과 늙어 가는 모습이 싫어 이후 발치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치통과 신경통, 입냄새에 시달렸습니다. 비록 치아 전체를 잃지 않았지만 진한 향수를 바른 손수건으로 입에 가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고대 중국에서도 판다를 다른나라에 보내서 외교정책을 했던적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 <고사기>에 658년 당 태종이 판다 2마리를 일본에 기증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최근의 중국의 현대적 판다외교는 어느시기부터 어떤 배경으로 시작하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의 판다 외교는 1941년 시작되었습니다. 중일전쟁이 벌어지던 당시 중화민국의 장제스 총통의 부인 쏭메이링 여사가 미국 지원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로 판다 한 쌍을 기증한 것이 중국 판다 외교의 기원입니다. 이후 중국은 영국, 미국, 일본벨기에, 프랑스, 독일, 캐나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 러시아 등 18개국에 우호적 관계의 상징으로 판다를 선물하였습니다.하지만 완전한 선물이라기보다는 임대 형식으로 1983년 '워싱턴 조악'에 따라 희귀 동물을 다른 나라에 팔거나 기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나라 역사상 첫 방파제가 생긴 곳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에 있는 방어진방파제는 1910년 10월 총 공사비 6천 원을 들여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방파제입니다. 길이 90m에 6백여 평을 매축하여 어선 계류장 1만 1500㎡를 확보하였습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