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과 부여는 어떤 관계라 할 수 있나요?
고조선과 부여는 직접적인 한 왕조가 다른 왕조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같은 예맥계 국가라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습니다. 고조선과 부여는 기원전 2세기 무렵에는 함께 존재하면서 한나라와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조선의 멸망 이후 유민들이 한에 저항하면서 부여, 고구려 등의 국가가 성장했습니다.따라서 고조선이 먼저 수립되었지만 고조선, 부여의 직선적 계승이라기 보다는 같은 예맥 계통의 문화와 정치적 환경을 공유하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고려, 조선시대의 왕들도 아들이 없으면 왕족 중에서 양자로 데려온 경우도 있나요?
고려는 기본적으로 왕족 내부의 형통 계통이 중심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양자를 들이는 경우는 없습니다. 즉, 고려는 보통 왕실 혈통 안에서 아들, 형제, 조카 순으로 후계자를 세워 왕위를 이엇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부계 혈통과 적장자 원리를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왕족 가운데 양자로 입적하여 왕위를 계승한 사례는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철종은 순조의 아들로, 고종도 효명세자의 아들로 입적하여 왕위를 잇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가문처럼 아무나 양자로 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중3 1학기 기말필기 좀 부탁드립니다...ㅠㅠ
발해는 당의 3성 6부 체제를 받아들였으나 독자적으로 운영하였습니다. 우선 관청 명칭의 차이입니다. 상서성, 중서성, 문하성을 정당성, 선조성, 중대성의 3성을 두고, 정당성의 대내상이 수상으로 그 아래 이원적으로 좌사정을 두고 충부, 인부, 의부를 관할하였으며, 우사정은 지부, 예부, 신부를 관할하였습니다. 특히 6부의 명칭은 유교적 명칭이 특징입니다.그리고 발해는 인안, 대흥과 같은 연호와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정치적으로 황제국의 지위를 표방했습니다. 또한 발해의 지방은 5경 15부, 62주로 구분하여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렸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왕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사고를 가진 왕은 누구인가요?
조선신대 국왕 가운데 가장 현대적 사고를 가진 국왕은 정조라고 봅니다. 정조는 탕평책을 계승하여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였습니다. 특히 서얼의 차별을 철폐하여 평등 사회를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규장각이라는 학술 기구를 두어 학문적 비서 역할을 수행하게 하고,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정약용 등의 실학자들을 중용하여 실용적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또한 경제적으로 상업과 유통의 피해를 주었던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지향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과거 사람들은 왜 왕이나 황제를 절대적인 존재로 여겼을까요?
과거 사람들은 왕과 황제를 신과 연결된 존재로 봅니다. 즉 왕권이 신에게서 왔다고 여겨져 왕에게 복종하는 것이 곧 질서와 신앙을 지키는 일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중세 유럽과 같은 봉건제 사회는 주군과 신하 관계에 익숙했습니다. 또한 당시 백성들은 중앙 권력이 약하면 약탈, 내전, 살인 등 부정적 사건으로 혼란해질 수 있으므로 강력한 군주가 질서를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최소한의 전쟁과 혼란을 줄여주기 위해 왕권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공룡의 뼈들은 어뗳게 아직도 보존되는건가요?
공룡의 뼈는 그대로 남은 것이 아니라 화석이 된 것입니다. 죽은 뒤에 진흙에 덮히고, 산소와 세균 작용이 줄어 점차 뼈모양의 돌처럼 단단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하수 속 광물 성분이 뼈의 빈공간과 세포 구조에 스며들어 서서히 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실제 화석은 원래 뼈라기 보다는 뼈의 형태를 가진 돌이라고 보면 됩니다.복원은 원래 뼈 조각을 바탕으로 하고, 없는 부분은 비슷하게 흔적을 과학적으로 맞춰 복원하는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과거 제국들은 왜 확장 이후에 내부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많았을까요?
제국은 확장할 수록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하지만 통치를 위한 내부 관리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영토가 넓어지면 중앙 집권화가 더욱 어렵고, 행정 비용도 많아집니다. 또한 피정복민을 지배하면서 언어, 민족, 종교 등의 충돌이 생기고, 문화적 갈등과 분리 움직이 발생합니다. 또한 이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더 먾이 유지해야 해 군사비도 많이 증가합니다. 따라서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하면서 내부 불만이 많이 늘어나 반란의 여지가 큽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1
마음에 쏙!
1,000
돼지에 대한 이미지가 "부유" 처럼 이용되는 곳은 어던 나라들에서 나오는 특징인가여?
돼지를 부유, 복, 재물이 상징으로 보는 것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있습니다. 돼지는 본래 농경 사회에서 중요한 가축으로 다산 때문에 풍요를 상징합니다. 그 기원은 고대 농경 사회에서 부터 자리잡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돼지가 재산과 연결되어 돼지꿈은 대박을 의미합니다. 서양에서도 돼지는 나쁜 상징만이 아니라 때때로 번영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성서적 전통 때문에 탐욕, 불결함, 타락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 있는 편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노벨상은 몇개의 분야에 대해서 상을 주는 건가요?? 왜 그분야에만 주는지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
노벨상은 모두 6개 분야입니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입니다. 본래 노벨의 유엔에 따라 그의 재산에서 생기는 이자를 나눠 주는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물리학, 화학, 의학, 문학, 평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글너데 뒤에 1965년 경제학싱 추가되어 모두 6개 분야에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다른 분야에도 중요하지만 노벨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이고, 전 분야 공로상이 아니라 특정한 인류 기여 분야에 대한 상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앵글로 아메리카가 역사가 더 오래 되었나여? 라틴 아메리카가 더 역사가 오래 되었나여?
앵글로아메리카는 리오그란데강 이북 지역으로 영국에 영향을 받은 지역이고, 이남 지역의 라틴아메리카는 스페인,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지역입니다. 앵글로 아메리카와 라틴 아메리카는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봐야 합니다.하지만 언밀하게 말해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에 라틴아메리카는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이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문명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라틴 아메리카 지역이 먼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