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시대 태조왕이 약 100년동안 즉위했다는게 사실인가요?
태조왕은 53년부터 146년까지 약 94년간 재위하고 119세에 사망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평균 수명이 30~40세임을 가정했을 때 과한 재위기간입니다. 그런데, 동생 차대왕, 신대왕도 90세 장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재위 기간 기록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구려 초기 안정화와 업적을 강조하기 위한 신성함을 부각, 미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봅니다. 또는 여러명의 단기 왕들의 기록을 태조왕으로 통합하여 기록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실제로는 20~30년정도 재위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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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의 개화기는 어떻게 다른가여?
일본은 1854년 미국에 의해 개항되고, 외국 상품의 유입과 막부에 대한 불신으로 존왕양이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쓰마번과 쵸슈번의 하급 사무라이들이 1868년 막부타도와 왕정복고, 그리고 근대적 개혁의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메이지유신은 서양의 과학 기술은 물론이고 사회, 사상, 제도 등까지 본받으려는 문명개화론에 입각하여 적극적인 개화정책을 추진하여 일본의 체질을 변혁했습니다.반면 우리나라는 19세기 통상개화론의 확대와 고종의 친정, 그리고 일본의 운요효 사건을 계기로 1876년 개항과 더불어 개화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초기 개화파들은 청의 양무운동과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급진과 온건 개화파로 나뉘어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 비해 개혁의 방향에 약하고 제한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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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을때 말하는 여보세요는 어디서 유래 된 말인가요??
'여보세요'라는 것은 전화 초창기 사람들이 수화기 쪽 보이지 않는 상대를 부른 것에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의 '여'와 '보다'의 '보', 그리고 '세요'의 해요체가 합쳐진 말입니다. 1880년 후반 전화가 처음 들어왔을 때 교환원을 통해 연결되었는데, 상대나 교환수를 부르는 표현이었습니다. 즉 전화기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대를 '여보시오'(이쪽 좀 보세요)라고 불렀고 교환수가 응답하며 퍼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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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가 살아 있었더면
단종의 모후 현덕왕후가 살아 있었다면 수렴청정을 통해 단종의 안정적인 통치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현덕왕후는 1441년 단종을 낳은 직후 산후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1452년 문종이 사후 어린 단종이 즉위하면서 단종을 보호해줄 왕실 어른이 없었습니다. 즉,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할 틈이 생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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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은 과연 가능한것일까요? 궁금해요
시간 여행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제 실현은 기술적으로 먼 미래 이야기로 봅니다. 상대성 이론에 따라 빛의 속도에 가까운 우며, 중력장에서 시간이 느려진다는 미래 시간 여행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웜홀이나 닫힌 시간 곡선 같은 이론에 의해 과거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논리적 모순과 엄청난 에너지 요구로 불가능하다는게 주류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실현되더라도 사회, 윤리적으로 혼란이 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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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츠네 미쿠랑 죠죠의 기묘한 모험 중에 뭐가 더 인기 많나요??
하츠네 미쿠가 죠죠의 기묘한 모험보다는 일반적으로 인기 있는 것 같습니다. 2025년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있었던 하츠네 미쿠 이틀 공연에서 9500명 관객 매진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국내 팝업스토어, 프로젝트 세카이 게임이 인기가 큽니다. 반면 죠죠의 국내 인지도는 낮습니다. 더구나 절음 층 일부 오타구 팬덤에 한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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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수가 처음에는 천연 광천수에서 시작했다는데 맞나요??
탄산수는 처음 지하 깊은 물줄기가 흘러갈 때 지하 이산화탄소가 자연스럽게 물에 녹으면서 탄산이 든 물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물을 천연 광천수, 혹은 탄산 온천물이라 불렀습니다. 18세기 영국의 과학자 조지프 프리슬리 등이 이를 인공적으로 만들기를 시도하여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실험을 거쳐 인공적으로 탄산수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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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봐야하는지 궁금해여?
'역사란 무엇인가?"에대한 정의로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하여 답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실제로 일어난 사건 그 자체로 역사의 객관성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후대에 역사가에 의해 사건 가운데, 선택하여 기록한 것을 말합니다. 즉 역사가의 주관성을 강조합니다. 영국 역사가 E. H 카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의 연속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역사가의 해석을 바탕으로 조명된 것으로 말합니다. 전쟁, 침략, 흥망의 반복을 보면서 감정만 휘둘리기 보다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역사가의 눈으로 맥락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왜 저렇게 살았는지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 내가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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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팔만대장경은 몽골 침략으로 인해 강화 천도 시기인 고려 고종 시대에 16년간 81,258장의 목판을 판각하여 만든 경전입니다. 팔만대장경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세계 기록 유산이자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5200만자에 오자, 탈자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기도 합니다. 750년동안 보관되었지만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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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탕평책'이 당시 정치 구조에 미친 실질적인 영향과 한계가 궁금합니다.
숙종 시대 잦은 환국으로 붕당정치가 변질되고, 정치적으로 혼란했습니다. 이에 영조, 정조는 탕평책을 시행하여 붕당 정치 문제점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영조는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고, 탕평파를 육성하였으며 서원을 축소하였습니다. 또한 붕당간 갈등의 요소인 이조전랑의 권한을 약화시켰습니다. 정조도 적극적으로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였으며, 규장각을 설치하고 초계문신제를 시행했습니다. 탕평 정치로 인한 정치적 안정은 영조, 정조 때 경제 발전과 문화 발전에 바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 정조 시대의 텽평 정치는 본질적으로 붕당의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붕당을 대립을 억누른 것이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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