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들은 정치권력 다춤 외에 어떤 정책적 차이를 가지고 있었나요?
붕당이 처음 형성될 당시는 공론 정치의 수단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즉 왕의 일방적 명령이 아닌 여론과 토론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취지에서 성립된 것입니다. 하지만 분당 과정에서 정파적 차이 이외에도 성리학의 해석과 통치 철학에 따른 학파적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특히 동인를 구성한 영남학파는 이황의 주리론, 서인은 이이의 주기론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따라서 동인은 수기에 무게를 두었다면, 서인은 치인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이후 현종 때 예송 논쟁에서 왕권과 신권의 비중을 놓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했으며, 대외적으로 북벌론과 실리를 놓고도 댈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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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권에서 힘이 가장 강한 사람으로 비유되는 사람은 누가있을까요?
동양에서 힘이 가장 센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은 항우입니다. 항우는 죽기 직전 해하에서 부른 노래에서 스스로 이렇게 읋었다고 합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도다" 이 구정에서 나온 '역발산기개세'는 지금도 강한 힘을 가진 영웅을 일컫는 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산을 뽑을 만한 힘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항우는 실제로 무거운 솥(鼎)을 번쩍 들어 올렸다는 기록이 <사기> 항우본기에 전해집니다.그리고 여포는 힘보다는 무예가 출중한 인물로 손에 꼽힙니다. 특히 '사람 중에는 여포, 말 중에는 적토마'라는 말로 유명한데, 이는 여포가 무예가 뛰어나다는 비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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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할 때 유리잔을 짠! 하고 부딪히는 문화는 왜 생겨났을까요?
술을 마실때 유리잔을 부딪히는 문화는 여러 기원이 존재합니다. 가장 유력한 주장으로 중세 유럽에서 귀족들 사이에 독살을 막기 위한 방법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잔을 세게 부닺히면 술이 서로 넘쳐 섞이니 상대가 내 술에 독을 탔다면 자기 술에도 독이 섞여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독살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입니다.그리고 중세 유럽에는 악령이 술 안이나 축제 주변에 깃든다고 믿는 습관이 있는데, 종소리로 악령을 쫒는 것처럼 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에 악령을 쫒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술을 마실 때 시각·후각·미각·촉각은 이미 동원되는데, 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청각'을 더해 건배를 오감의 경험으로 완성한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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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백제의 결혼동맹으로 태어난 후손 중 왕이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맞서 신라와 백제는 433년 나제동맹을 맺었고, 이를 더 굳히려고 493년(소지 마립간 15년) 백제 동성왕이 신라에 청혼해 신라 왕족 이찬 비지의 딸을 왕비로 맞았습니다. 비지는 소지 마립간의 동생이자 왕족으로, 신라 왕실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혼 동맹에서 태어난 자녀가 백제의 왕이 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왕을 이어 왕이 된 무령왕은 <삼국사기>에 동성왕의 앋르로 적혔지만 무령왕릉 지석상에 461~462년생으로 혼인 소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제도적으로 신라 왕비 소생이 왕이 될 수없는 규정은 없었으며, 방계 왕족도 즉위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즉 혈통상 배제 규정보다는 그 혼인 자체가 왕을 낳지 못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즉, 정리하면, 493년 결혼동맹은 실재했지만 그 소생이 백제 왕이 된 사례는 기록·고고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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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알레스카를 왜 미국에 팔았나요?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한 이유는 전략적 판단에 의한 것입니다. 1867년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720만달러에 넘겼습니다. 그 이유는 크림 전쟁 패배로 인한 재정 파탄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알래스카는 영국령 캐나다와 맞닿아 있어 영국과 전쟁이 일어나면 방어도 보급도 불가능하였습니다. 허드슨만 회사가 알래스카 자원을 노리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1858년 아이훈 조약과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를 얻으면서 태평양 진출에 더윽 유리하여 상대적으로 알래스카의 중요성이 약화된 것도 있습니다. 물론 러시아가 알랙스카에 엄청난 양의 석유 매장 사실도 몰랐던 것도 이유입니다. 즉, 러시아의 계산은 "지금 팔면 현금을 챙기고 영국에 뺏기는 것도 막는다"였고, 당시 조건에서는 합리적 선택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뒤 알래스카에서 터진 금·석유가 매각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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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일본의 조선 침략을 설계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일본의 한국 국권 피탈을 설계한 사람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메이지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추지한 것입니다. 단계별로 본다면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을 추창하기도 합니다. 또한 구로다 기요타카, 이노우에 가오루는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여 개항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는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으로 청과 러시아를 격퇴하고, 을사늑약과 정미 7조약을 체결하여 국권을 피탈해 갔습니다. 그는 '한국 병합의 기획자이자 실행자'로 평가되며, 대형 사건마다 개입하지 않은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마지막 한국 병합을 주도한 인물로 고무로 주타로,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설계의 총괄은 이토 히로부미, 문을 연 실무는 구로다·이노우에, 마무리는 데라우치·고무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받친 배경은 메이지 정부와 군부의 집단 전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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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는 왜 정복자이면서 동시에 문화 통합자로도 평가받나요?
알렉산더가 통합자인 근거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는 330년 다리우스 3세 사후 페르시아 복장, 궁정 절차, 의전관 제도를 받아들였고, 327년 프로스키네시스 도입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인을 샤프라프와 친위기병대에 임병하였습니다. 또한 324년 수사 대혼례에 알렉산더와 장교 80명이 페르시아 귀족 여성과 결혼하고, 병사 1만명의 아시아 여성과 결합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파괴자의 모습도 있습니다. 테베는 판다로스의 집만 남기고 완전히 파괴되었고, 페르소폴리는 불탔으며, 티레, 가자에서는 주민이 대량 학살되었습니다. 그래도 통합자로 남는 이유는 의도와 결과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복은 헬레니즘 세계를 낳았고, 그리스어 통용과 간다라 불교미술 같은 혼종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학계는 "알렉산더가 융합을 계획했다"보다 "정복이 융합을 낳았다"로 정리하며, '헬레니즘화'라는 용어 자체도 재검토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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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들이 마시던 마유주에 대해서 궁금해요.
마유주는 독한 술이 아니라 맥주보다 약한 음료입니다. 도수가 0.5~3% 정도라 합니다. 마유주는 암말 젖을 발효시킨 것으로 일반 맥주보다 낮습니다. 유목 지역에서는 하루 종일 마시는 음료였고, 어린 아이에게도 먹였습니다. 전쟁 중에는 술이 아니라 보급품이었습니다. 하루 2리터를 마시면 330kcal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추위에도 얼지 않고, 젖산, 알칼 알콜 때문에 물보다 안전했습니다. 하지만 몽골군은 무절제하게 마시지 않았습니다. 칭기즈칸의 <야사>에는 "한달에 세번만 취하라, 아예 취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라는 조항이 있을 정도로 절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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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은 왜 남인과 북인으로 다시 갈라지게 됐나요?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된 계기는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을 계기로 합니다. 기축옥사 조사에 나선 정철이 동인의 유력 인사를 가혹하게 처벌했는데, 주로 남명 조식과 화담 서경덕 문인의 피해가 피해가 컸습니다. 반면 이황 문인들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고, 서인의 공세를 막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식과 서경덕 학파가 북인, 이황 학파가 남인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그리고 결정적 분화는 1591년 건저의 사건입니다. 정철이 세자 책봉을 건의했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받아 파직을 당하는데, 집권한 동인 가운데, 기축옥사로 피해가 컸던 북인은 강경한 처벌, 반면 피해가 적었던 남인은 온건한 처벌을 주장하면서 분열이 기정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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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왜 현대 경영이나 처세술의 교본으로도 자주 활용되나요?
삼국지의 경영, 처세 교본으로 쓰이는 이유는 추상적 이론서가 아니라 인물, 상황, 선택, 결과가 담긴 사례집처럼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삼국지를 보면 조직의 전 생애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즉 유비의 창업과 적벽 대전과 같은 연합, 그리고 분열과 쇠퇴까지 창업자, 관리자 등 모든 직급의 역할 모델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지의 주인공들로 부터 다양한 리더쉽을 배울 수 있습니다. 조조에게는 능력과 실리, 유비에게는 덕과 신뢰, 손권에게는 균형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인재 경영, 전략 및 협상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삼국지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경영 모델로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일본 산업능력대학은 삼국지로 비즈니스 전략 연수 과정을 운영하고, 싱가포르는 전략경영 과정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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