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요? 물시계
시계의 기원은 아주 오래됩니다. 해시계와 물시계 처럼 자연 현상을 이용해 시간을 재는 방식은 기원전 3000년 이상의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16세기 기록상 존재하는 이집트 물시계는 그릇 안쪽에 눈금을 새겨 두고, 물이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높이를 기준으로 시간을 읽었습니다. 기원전 15세기쯤에는 밤의 시간을 재는 데 널리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기록상으로는 신라 성덕왕(718)에 물시계를 관리하는 관청이 설치된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세종대왕 시기(1434)에는 자격루라는 자동 물시계를 만들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인도의 문명은 총 몇 갈래로 나뉘고, 각 문명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나겨? 답글 바랍니다만…?
인도 문명은 우선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을 근거로 발달한 인더스 문명, 그리고 이후 베다 문명, 그리고 시기별 불교, 힌두교, 이슬람 문명으로 이어집니다.인더스 문명은 드라비다족이 주도하여 하라파, 모헨조다로 등의 인더스 강 유역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계획적 도시 건설이 특징입니다. 베다 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 중앙아시아에서 이동해 온 아리아인들이 갠즈스강까지 이동하면서 인도 북부 지역에 발달한 문명입니다. 철기와 카스트, 브라만교를 특징으로 합니다. 기원전 6세기 불교의 등장과 이후 마우리아, 쿠샨 왕조의 고대 불교 문화, 그리고 6세기 이후 굽타 왕조 시대에는 힌두교, 산스크리트 문학, 굽타 미술, 자연과학이 발달하였습니다. 8세기 이후 서북 지역으로부터 전래된 이슬람교는 16세기 무굴제국을 성립하였으며, 인도 이슬람 문화의 발전하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인류 문명이 생기기 전의 인류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답글 바래여
인류 문명은 청동기 시대와 함께 탄생했습니다. 즉 문자와 함께 기록이 남아 있는 역사 시대 이전의 시대를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구석기, 신석기 시대입니다. 구석기 시대는 채집, 수렵을 통해 생활했습니다. 무리를 지어 이동을 하며, 동굴이나 막집을 지어 거주했습니다. 그리고 만년전 신석기 시대는 움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어 정착했습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으며, 토기를 제작하여 사용했습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씨족을 바탕으로 부족을 구성하였으며, 평등한 사회였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한국사1급 딸려고 하는데 공부법 알려주세요
한국사 검정 능력 1급을 취득하려먼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합니다. 우선 전체 흐름을 잡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별 강의 요약본으로 한번 흞으세요. 특히 인터넷 강의, 동영상 강의 사이트를 선택하여 스케즐에 따라 학습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기출 문제를 바로 풀어보세요. 개념 학습 이후에는 회차별 기출을 풀면서 어떤 부분이 자주 출제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답 노트 활용하여 복습 및 반복 학습 과정이 필요합니다. 조선사는 건국, 왕권 강화, 사화, 임진왜란, 붕당, 세도정치 처럼 큰 줄기를 잡아 학습하세요. 근대사도 개항, 개화 정책, 국권피탈 처럼 흐름을 잡고 주요 사건 중심으로 정리 학습 하세요,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세금이란게 언제부터 있었고 없었던 나라나 시대가 있었을까요?
세금 제도는 문명과 함께 등장한 제도입니다. 국가와 권력이 생기고 군대, 행정,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농산물, 노동, 물품 형태로 걷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생긴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탄생 무렵입니다. 당시 정착 농경 사회가 커지면서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이 필요해져서 만들어졌습니다. 수렵 사회처럼 처럼 국가가 없던 시대에는 세금이 없었지만 국가가 성립되면서 거의 같이 생긴 제도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조선궁궐에서 창덕궁은 어떤 기능을 가진 건물이었나요?
창덕궁은 태종이 경복궁이 너무 상징적이고 격식 중심, 그리고 과거 왕자의 난 등에 의한 좋지 못한 기억때문에 1405년 보조 궁전으로 건설하였습니다. 창덕궁은 왕이 머무는 거처이며, 동시에 정무를 보는 정치 공간입니다. 휴식과 생활이 함께 있는 궁궐입니다. 경복궁이 조선의 대표적 국가 의식과 상징성을 가진 궁궐이라면 창덕궁은 보다 실용적이고 생활 중심의 궁궐에 가까웠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가톨릭의 언약궤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에티오피아 정교회와 전승은 '악숨의 성모 시온 교회에 언약궤가 보관되어 있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검증할 수 없으며, 학계에서도 전설 또는 신앙 전승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솔로몬과 시바 여왕, 메넬리크 1세를 잇는 에티오피아의 왕실 전통 때문입니다.즉,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이동이라기 보다 에티오피아 왕실과 교회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신성한 전승에 가깝습니다. 아프리카가 멀어 보여도 고대에는 홍해와 아라비아를 통한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종교 전통이 전해지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유대교 전통이 에티오피아아에 전해진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지만 억약궤 실물의 존재 여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시들해졌네요. 역시 우리나라는 빨리 잊어 ㅋ
스타벅스의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운 탱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의 불매운동은 현재 약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른바 '냄비 근성'과는 다릅니다. 모든 사건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약화되듯이 희미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이 사건으로 인해 스타벅스 오너의 역사관을 시민과 소비자들이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론인해 기업의 매출에도 차질은 주어 피해가 되었습니다. 따러서 어느정도 불매운동은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도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역사 의식의 함양에도 역할을 했습니다.또한 처벌은 감정적 응징보다 재발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역사·기념일·혐오표현을 포함한 사전 심사, 최종 승인 기록, 외부 검토 같은 장치가 있어야 비슷한 일이 반복되기 어렵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고종은 우리나라 역사에 어떤 왕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고종은 일반적으로 무능한 군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외세의 침략 가운데 국권을 유지하려한 군주이기도 합니다. 고종은 12세로 즉위하여 친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에 의해 세도정치를 청산하고, 삼정의 문란을 해소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1873년 친정을 통해 개항,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880년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여 근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비록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의 위기 상황도 있었지만 갑오개혁과 대한제국 선포 및 광무개혁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러일전쟁 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침략으로 국권이 피탈 당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1907년 강요에 의해 퇴위됩니다.고종의 집권 시기는 조세 말 세도정치로 인한 국정 혼란 상황에 즉위하여 통치 체제 재정비와 외세의 침략에 맞선 근대화하려 했던 인물입니다. 반면 왕권 유지에 집착한 면, 신하와 세력 균형에 휘둘린면, 그리고 일본이 압박이 너무 강해 실질적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점에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한 국왕으로 평가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미국에 개신교는 이스라엘의 유대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미국의 개신교가 이스라엘의 유대교를 보는 태도는 한가지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신학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가 겹쳐 일부 미국 개신교, 특히 복음주의 구약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유대인을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가진 민족으로 보아 이스라엘의 지지를 신앙으로 연결합니다. 정치적으로도 중동 전략에서 이스라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유대교와 기독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느냐에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유대교는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와 신학적으로 같은 편이 될 수 없고, 기독교도 전통적으로는 유대교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대교와 기독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느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같은 편이라기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일부 신학적 해석이 겹쳐서 협력하는 관계에 가깝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