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권에서 졸장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서양권에서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북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B 매클렐런이라 생각합니다. 매클렐런은 병력이 많았으면서도 불구하고 소극적으로 작전했으며, 결정적 순간에 진격하지 못한 장수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그는 1862년 대군을 이끌고 리치먼드, 즉 남부 연합의 수도를 노렸지만 남군을 실제로 훨씬 강하다고 판단하여 자주 진격을 늦추고, 결국에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는 무능한 장군은 과하게 신중해서 기회를 잃은 장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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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후궁을 가장 많이 둔 왕은 어떤 왕인가요?
조선시대 후궁을 가장 많이 둔 왕은 태종입니다. 태종은 사료에 따라 다르지만 17(18명)에 이릅니다. 숙종은 12명, 영조는 10명, 성종 10명을 두었습니다. 태종은 조선 왕들 가운데 후궁 수가 특히 많은 편으로 꿉히며 그 만큼 자녀수도 많았습니다. 후궁 수가 이렇게 많은 것은 개인적 성향도 있었지만 왕권 강화, 후계를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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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모를 일으킨 사람들은 역모에 실패하게 되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돈, 사촌까지 전부 처형되었나요?
반역을 일으키면 멸문지화를 통해 강력하게 처벌하고, 복수를 막기 위해 삼족까지도 처벌했습니다. 연좌제의 범위에 해당하는 삼족은 보통 친가, 외가, 처가를 포함한 가까운 친족 집단을 말합니다. '3족멸'은 단순히 숫자 3을 뜻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가문 전체를 뿌리채 없애는 상징적 표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실제 처벌은 모든 친족을 똑같이 죽였다기보다 중심 가담자 사형, 그리고 가까운 친족에 대한 연좌 처벌처럼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다만 자료상으로는 사돈 처럼 인척 전체까지 모두 같은 수준으로 처벌한 것이 아니라 보통은 직계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이 더 강하게 영향을 받았고, 먼 친척은 사건에 따라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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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정답 2,5번 둘다 되는거 아닝가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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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명은 왜 크게 발전하지 못햇는지궁금해여?
고대 이집트 문명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이집트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인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집트는 피라미드, 신전, 상형문자를 사용했으며, 발전의 모습이 건축과 종교에 집중되어 보입니다. 하지만 나일강과 사막, 바다에 둘러쌓여 대외 교류가 제한적이었으며, 따라서 오랫동안 통일 왕조를 유지하였지만 발전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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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대는 대체로 언제부터 언제로 보는가여? 답글 바랍니다만...?
일반적으로 서양사에서는 15~16세기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항로의 개척에서부터 시작하여 18세기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여 신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 종교개혁은 종교의 권위가 약화되고 국가와 개인의 역할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항로 개척은 세계 교역과 상업의 발달로 근대 자본주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민혁명은 평등한 시민사회,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근대의 시작이라 봅니다. 강화도 조약으로 서구의 문물을 접하고, 사상과 제도가 유입되어 근대화를 견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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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도 반란이나 쿠데타가 있었나요?
북한에서 알려진 바로는 쿠데타 시도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북한의 강력한 통제와 숙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김일성과 갑산파를 제거하려 했으나 오히려 실패하여 김일성 유일 체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제 6군단 쿠테타 모의 사건처럼 군부 내부에서 체제 전복 시도가 적발된 사례가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김영춘이 이상 징후를 알아채면서 발각되었고, 북한 당국이 관련자를 대거 체포 숙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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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문화재 반환 문제를 역사적 정의와 현대 법률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역사적으로 침략,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약탈된 문화재는 돌려주는 것이 맞다는 입장입니다. 빼앗긴 정황이 분명하면 원래 나라에 돌아가야 합니다. 즉, 도둑맞은 물건이면 돌려주는 것이 맞습니다. 예를 들어 병인양요 당시 약탈한 외규장각 보물은 반드시 반환받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면 그 권리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수집, 매매 등을 통해 물건을 소유한 것이기 때문에 그 소유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직지심체요절은 개화기 시기 우리나라에 파견된 프랑스 공사 플랑시가 합법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약탈 문화재와 구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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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마다 사용하는 '글자'의 체계(표음문자 vs 표의문자)가 다르게 발전했을까요?
문자 체계는 문화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언어 구조와 기록 필요에 맞춰 발달 한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회는 소리를 잘 적는 방식, 어떤 사회는 뜻을 잘 전하는 방식으로 만들면서 표음, 표의문자로 만들어졌습니다.음소 중심 문자는 말소리를 셈리하게 적기 쉬우며, 의미 중심 문자는 뜻과 형태소를 유지하는데 유리합니다. 게다가 종교, 교육, 기록 재료 등과 결합하여 지역의 문자 형태로 발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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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류가 종이를 만들기 전에는 어떻게 대량의 정보를 기록하고 보존했을까요?
과거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기록을 남겼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진흙을 판처럼 만들어 글자를 눌러 새긴뒤 말리는 방법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중국이나 동아시아에서는 나무조각이나 대나무 조각에 글을 써 엮은 뒤 묶은 형태로 책을 만들어 보관했습니다. 또한 비단이나 천에 문서를 남겨 보관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를 눌러 편 다음 글을 써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했습니다. 또한 양피지는 튼튼하고 책 형태로 발전하기 쉬워 장기 보존에 유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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