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영화파묘에서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높은산맥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나오던데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곳곳에 일제가 쇠말뚝을 박았다는 주장이 있어요. 그 이유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이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한국의 '기’를 끊고, 한민족의 정기를 약화시키려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주장은 대한민국 정부 시절 측량용으로 박아 놓았거나 유격 훈련을 위해 설치했다는 주장도 있어요.
학문 /
역사
24.03.08
0
0
조선 왕들의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은 몇 시였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의 국왕은 매우 바쁜 하루 일과를 가졌습니다. 왕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하여 밤 11시에 취침에 들어가 약 6시간의 수면합니다. 다양한 공식적인 업무와 의식에 참여하며, 세 번의 식사와 세 번의 간식, 그리고 세 번의 공부 시간을 포함했습니다. 또한, 두 번의 업무 시간과 두 번의 왕실 문안을 처리했으며, 저녁에는 석강(저녁 강의)에 참석한 뒤 저녁 식사와 휴식을 취했으나 밀린 업무로 야근이 일쑤였습니다.
학문 /
역사
24.03.08
0
0
돌아가시면 지내는 49제가 불교문화가 맞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49재는 고인을 위해 49일 동안 지내는 불교 의식입니다. 이 기간 동안 7일마다 한 번씩 총 7번의 제사를 지내며, 고인의 영혼이 저승에서 명부시왕에게 심판받고 환생을 준비하는 과정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의식은 고인이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마지막 49일째에는 막재라 하며 기제사와 같은 형식으로 마무리됩니다.
학문 /
역사
24.03.08
0
0
절이나 사찰입구에 사천왕상이 무섭게 서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찰 입구의 사천왕상은 강력하고 역동적인 포즈와 분노에 찬 표정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사천왕상은 불교에서 우주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무서운 모습으로 표현되는 이유는 악귀나 사악한 잡귀들을 제압하고 불법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물리치기 위함입니다. 이들은 불교의 외호신으로서,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무서운 모습은 불교 미술의 전통적인 표현 방식으로 호법신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학문 /
역사
24.03.08
0
0
고조선의 실제 갑옷은 어떤 외형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조선의 갑옷은 주로 청동, 뼈, 가죽 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고조선의 영역에 있던 숙신에서 뼈갑옷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진서 동이열전 숙신씨전) 또 고조선 영역인 대목단둔, 범의구석, 흑룡강성 경화 유적 등에서 장병형 뼈갑편이 출토되었습니다. 긴 네모 모양의 조각들로 구성된 뼈갑옷 조각은 신석기시대 후기 유적에서도 발견되었으며, 이는 고조선이 뼈갑옷을 건국 초기부터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고조선 후기에는 철갑옷도 생산되었는데, 평양 지역에서 출토된 물고기 비늘 모양의 철갑옷 조각이 등장합니다.
학문 /
역사
24.03.08
0
0
신라의 골품제에서 1~3두품은 어떤 계층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합니다.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삼국은 신분제도를 정비했습니다. 그리고 지배층은 또 다시 그들 사이의 계층을 구분하는 신분제를 별도로 만들었으며 골품제가 그 사례입니다. 골품제도는 신라 사회의 신분을 결정하는 중요한 체계였으며, 왕족인 성골과 진골을 제외한 나머지 신분은 1두품부터 6두품까지로 구분되었습니다. 여기서 6~4두품은 소국 단계의 군장 출신이라면 1~3두품은 그들 아래의 관직 등 지배층이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통일 즈음 평민화 됩니다.
학문 /
역사
24.03.08
0
0
인신공양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에서의 인신공양은 주로 왕실이나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의 형태로 이루어졌어요. 예를 들어, 신라 시대에는 왕실에서 관리하는 우물에서 어린아이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9세기 통일신라 제의의 희생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경주 월성 해자에서 발굴된 유골들은 신라인골로, 인신공양 제례의 실체를 보여주는 첫 사례로 여겨집니다.인신공양에 대한 사실은 설화로도 나타납니다. 설화는 <심청전>의 근원설화(根源說話)가 되기도 하였어요. <심청전>에 영향을 끼친 '거타지' 설화도 역시 인신공양을 줄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거대한 토목공사를 할 때에 어떤 사람을 물 속이나 흙 속, 혹은 그 재료 속에 파묻는 것을 인주(人柱)라 하고, 인신을 제공하는 인신공여는 이를 소재로 한 설화로 인신공양 설화의 한 종류입니다. 인신공여라는 설화는 신라의 성덕대왕신종 전설(에밀레종 전설)이 유명합니다.
학문 /
역사
24.03.08
0
0
팔만 대장경은 왜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구 부인사에 보관 중이던 초조대장경이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후, 고려는 다시 대장경을 조성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는 재조대장경이라고 불립니다. 이 대장경의 제작은 불교의 힘에 의지하여 몽골을 격퇴하고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재조대장경은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불립니다.
학문 /
역사
24.03.08
0
0
한국의 역사에 병거, 전차 등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차는 중국, 유럽의 평원 전투에서 유리한 무기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같이 산악 지형에서는 기마 전투가 유하기 때문에 전차를 사용한 흔적은 찾아 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의 고조선 침입 당시 전차부대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한무제 침공 초기에 전차와 기마 부대를 활용하여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평안북도에서 출토된 고조선 시대의 분묘에서 2두 전차의 마구 유물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이 유물이 상당히 의미 있는 게, 당시 고조선의 기술 수준이 뛰어났음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는 수레나 그 바퀴 만드는 기술이 상당히 하이테크로 분류되었다. 제나라 환공과 수레바퀴 장인 윤편의 일화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광주광역시 신창동의 마한 유적지에서 말이 끄는 수레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바퀴통과 바퀴살, 바퀴축 등의 부속품이 대거 출토되면서, 고대 한반도의 나라인 마한의 백성들은 말이 끄는 수레를 사용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학문 /
역사
24.03.08
0
0
세계4대 문명의 발상지의 공통점은 뭐가있을 까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 4대 문명,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중국 문명은 모두 온난한 기후 지역의 큰 강 유역에서 발달하여 관개 농업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청동기 사용, 문자 발명, 도시 국가, 계급의 형성이 공통점입니다.
학문 /
역사
24.03.08
0
0
1594
1595
1596
1597
1598
1599
1600
1601
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