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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사람들은 왜 소고기를 안먹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도인들이 소를 숭배하고 먹지 않은 이유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먼저 종교적 이유입니다. 인도 최고의 신 '시바신'의 탈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시바신은 신중의 신으로 가장 유명한 신입니다, 시바신이 타고 타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가 타고 다는 소도 신성시 한 것입니다. 시바 신전 입구에 난디((Nandi)를 타고 하늘을 나는 복수의 신 시바의 초상이 걸려 있고, 가장 인기 있는 신이자 자비의 신 크리슈나는 암소의 보호자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베다 경전의 기록에는 소 고기를 먹는 것은 중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이유는 경제적 이유로 소는 땔감과 비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농사와 가장 연관이 있는 공물입니다. 셋째, 정치적 이유입니다. 불교와 자이나교의 부상과 함께 힌두교도들은 육식을 중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만의 권위에 반기를 들고 새롭게 등장한 불교와 자이나교의 도전에 제사장 중심의 힌두교가 위상이 흔들리자 브라만 제사장들이 계율로 불상생을 내세우면서 소를 신성시하게 되었습니다.
학문 /
미술
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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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로 들어선 조선과 대한제국에서도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오늘날 처럼 조선시대 승정원 관원들도 출퇴근 시간도 엄격하였습니다.출근시간은 묘시(卯時·오전 5~7시), 퇴근시간은 유시(酉時·오후 5~7시)였습니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진시(辰時·오전 7~9시)에 출근하고 신시(申時·오후 3~5시)나 유시에 퇴근했습니다.
학문 /
역사
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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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프랑스 대사관 건축물의 해석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제자인 김종업의 설계하여 1962년 완성한 건축물입니다. 김종업은 네마리의 학을 연상시키는 건물을 지었습니다. 무거운 지붕의 높낮이를 조정하여 학의 날개 짓과 같은 날렵한 건축물을 탄생시켰습니다. 즉 대사관은 1층을 비운 필로티 건물로 양탄자가 날아갈 듯 지붕이 하늘로 치솟는 구조이고, 대사관저와 업무동은 부드러운 곡선의 가교가 이어집니다. 또한 중앙 정원을을 부채꼴처럼 둘러싸고 있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학문 /
미술
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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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인(무당)이 일하는 곳에 가면 두 가지 색의 깃발이 있는데 의미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맨위 백색기 아래는 빨강기(천황기, 또는 서낭기)는 보통은 천지신명을 모시는 신제자가 있는 집(神堂)을 표시합니다.백색기만 달린 집은 무속인이 신을 받았는데 굿은 아직 하지 못하고 점사(사주나 운명을 점 칠수 있는 일)은 할 수 있을 때 긴 대나무에 하얀 깃발을 걸어요.빨강기가 달린 집은 전문적으로 굿만 하는 집으로 신내림을 받아 굿하는 법을 알아 굿도 할 수 있고 사람의 길흉화복에 대한 운명을 점칠 수 있게 되면 두가지 색의 깃발 즉 하얀 깃발과 빨간 깃발을 함께 매달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집은 모두 백색기와 빨강기를 함께 다는 것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학문 /
미술
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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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승탑은 언제 만들어졌고 어떠한 가치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주 고달사지 승탑(驪州 高達寺址 僧塔)은 경기도 여주시 고달사 터에 있는, 고려시대 초기의 부도입입니다. 승탑은 신라말 선종 불교의 유행에 따라 스님의 사히를 봉안한 탑으로 대체로 신라 양식인 8각원당형의 구조입니다.
학문 /
역사
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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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 작가 나쓰메소세끼의 작품에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곳곳에 있다던데요. 반전주의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모순되는 거 같습니다. 정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만주와 한국 여행기>를 번역한 김유영은 "나쓰메 소세키는 대외적으로 반전주의자 모습을 보였고 일본의 천황제와 전쟁에 부정적이며 식민지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 만주 여행기를 보면 일본인들은 자랑스럽고 영국인들은 당당하고 러시아인의 건축물은 훌륭했다고 하면서도 식민통치 하에 고통을 겪는 피식민지 하층 계급에는 불쾌하다, 더럽다는 표현을 쓴다"며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기존에 알려진 모습과는 다르다"고 설명했어요.나쓰메 소세키는 이후 '만주일일신문'에 기고한 '한만소감(韓滿所感)-하'란 제목의 글에서도 이중적인 시각을 드러냈어요. 암살에 떠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해씁니다."지난 여행 때 한 가지 느낀 점은, 내가 일본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자각할 수 있었던 점이다. 내지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에는 일본인 만큼 불쌍한 국민은 세상에 절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종 압박에 시달렸는데, 만주와 조선에 건너온 나의 동포가 문명 사업의 각 방면에서 활약하여 매우 우월한 존재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도 매우 믿음직한 인종이라는 인상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동시에 나는 중국인이나 조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눈앞에 두고 승자의 패기를 지니고 자신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나의 동포들이야말로 진정한 운명의 총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암살' 218쪽)
학문 /
문학
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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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명그릇은 언제 발견되었고 어떠한 의미가 내포되어져 있었으며 이를 통해서 무엇을 알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호우명 그릇은 경주 노서동 140호 신라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에서 발견되었어요. 1946년 발굴조사 당시 무덤에서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崗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라는 명문이 있는 청동 그릇이 출토되었습니다.밑바닥에 보면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호우명 그릇'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을묘년은 415년을 의미한다. 사망 3년후인 415년에 광개토대왕을 기념하기 위한 청동 그릇인데 10번째 그릇이라는 의미입니다.400년 왜구를 격퇴하고 신라를 구원한 광개토대왕 기념물의 경주 발견을 통해 신라와의 우호 관계, 아니 보호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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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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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고구려의 후계를 이은 나라라고 밝히는 외교문서는 어디에서 발견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의 <속알본기>에 따르면 발해 측은 국서에 스스로를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고 칭하고, "발해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간직하고 있다(復高麗之舊居 有夫餘之遺俗)"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학문 /
역사
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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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라는쟝르는어디서부터시작되엇는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레게라는 말은 "현재 유행하는"이란 뜻의 자메이카식 영어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레게는 1960년대 후반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레게 음악은 전통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초기 자메이카 스타일 음악에서 파생된 장르입니더.
학문 /
역사
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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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최초에 편의점은 언제 생겼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최초 편의점은 1982년 롯데쇼핑에서 서울 약수시장 앞에 개점한 세븐일레븐 1호점입니다. 그러나 롯데 편의점은 3호점을 마지막으로 1984년 철수하고 실질적으로는 1989년 5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 근처에 생긴 세븐일레븐이 최초라는 주장도 있네요.
학문 /
역사
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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